“사진의 뜻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3년 만에 『사진 인문학』 집필 출간한 사진비평가 이광수와의 인터뷰

 역사학자이자 사진 비평가인 이광수 교수가 『사진 인문학』을 들고 독자를 찾아왔다. 사진과 사진 비평의 세계에 매혹된 인문학자가 사진의 기술이 아니라 사진의 뜻을 찾아 인문학적 사유를 펼쳐 보인다. 무려 3년이 넘는 동안 월간 『사진 예술』에 연재를 해왔던 이 글은, 후반기에는 사진가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한다. 저자의 글을 직접 편집 출간 작업을 했던 편집자가 독자를 대신하여 몇 가지 질문을 드려 보았다.




 『사진 인문학』이라는, 어찌 보면 쉽고 어찌 보면 까다로운 주제를 들고, 독자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역사학자 그리고 시민운동가로서 책도 여러 권 내셨는데요. 이번에는 사진 비평가 내지 사진 인문학자의 책으로는 처음입니다. 사진가로서 그리고 사진 비평가로서 어떻게 이 세계에 접하게 되었는지요?


제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쯤의 일입니다. 2002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한 직후 제가 공동 대표로 있는 아시아평화인권연대에서는 아프간 난민을 긴급 구호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죠. 몇 차례 다녀온 뒤에, 우리는 후원회원에게 사진전 겸 보고회를 열었는데요, 글쎄, 제가 찍은 사진을 보니 죄다 흔들려 건질 수 있는 게 한 장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소중한 데를 다닐 텐데, 사진을 좀 배우라는 주위의 성화에 못 이겨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죠. 


그렇다면, 아마추어 사진가 아니면 하이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사진 창작 활동이나 예술 사진 등을 찍으면 그저 즐기는 일이 될 텐데, 왜 이렇게 인문학적으로 또 비평적으로 무겁게 접근하셨나요?


네. 그것은 제가 학자였기 때문에 천성적으로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다 보니, 개념적으로 정리하고 싶었고, 또 개념을 정리하다 보니, 그 개념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실제 사진가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사진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파헤치고자 한 것이죠. 무엇보다도 사진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단순히 보는 대상을 넘어 읽는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때문이지요.


이번 책은 3년여 동안 『사진 예술』에 연재하였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우리 시대의 사진가들과 소통한 대목이 독특한데요. 모두 24명의 하이 아마추어 수준의 작가들이죠?


네. 처음에는 인문학의 개념이나 원리를 사진 비평에 끌어오는 방식이었는데요. 나중에는 지금 활동하고 있는 사진 작가들을 더 들여다보고 싶었죠. 그래서, 사진가들에게 사진 작품과 함께 작업 노트를 보내달라고 청한 것이고요. 그 작업 노트를 통해서도 사진가들의 “뜻”을 읽으려고 시도해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진가들의 작품에는 “뜻”이 담겨 있는데, 그 “뜻”은 인문학에서 말하는 어떠한 관점과 연결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작업이나 활동을 사진가들과 함께 한 것이죠.


그러면, “사진”을 가지고 인문학을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여쭤 봐도 될까요?


사진은 인문학의 보고다라고 썼지만, 회화(그림)에 비하면 고유의 미학 담론이나 인식론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사진이 다른 예술 형식이나 표현 양식에 비해 인문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결코 뒤지는 장르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역사도 되고 과학도 되고 예술도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사진에 대한 감상평은 객관적이다 말할 수 없습니다.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유의 헤맴, 그것이 인문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편집자인 제가 정리해 보려다, 잘 안 되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언어도단일지 모르지만,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은 엄연히 구분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구분이 타당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멋진 사진, 좋은 사진이란 도대체 누가 규정한 것이고, 그렇게 규정하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역사학자로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선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평생 고민해 온 학자가 던지는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죠. 제 나름의 답은 이렇습니다. 

사진 언어는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사진가가 자신이 갖는 생각을 사진으로 재현하기도 어렵지만 독자가 그것을 읽어내기도 어렵습니다. 사진 언어는 그 특성상 논리의 문법을 가지고 의미를 제시한다기보다는 보는 사람만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데 적합하죠. 그 감성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것도 때와 장소 혹은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볼 때 독자 개인의 생뚱맞은 느낌이 사진가의 의도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거나 열등한 느낌이라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으로 나눌 수는 없다는 겁니다. 좀 더 쉽게 말씀 드리자면, 흔히들 흔들린 사진이나 구도가 틀어진 사진은 ‘나쁜 사진“이라고들 하는데, 그 사진으로 흔들리는 대상이나 어긋난 대상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 맥락에서는 ’좋은 사진”이 된다는 겁니다.


혹시 이 책을 쓰면서, 선생님의 책이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습니까? 혹은 이 책을 읽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사진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 도구로 소통도 하고, 사유도 하고, 인문학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팽배한 어떤 구조의 신화에 끌려 다니면서 사진을 숭배하기 보다는 사진으로 자기 자신의 사유 세계의 지평이 더욱 넓어지고 풍부해졌으면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책에 쓴 내용이긴 한데요, 독자는 작가의 의도에는 맞춰 가되 그만의 해석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됩니다. 또 독자가 끌려 다니지 않아야 하는 존재로 작가만 있는 게 아니죠. 비평가도 있고, 기획자도 있으며, 큐레이터도 있습니다.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기호학적 해석이나 맥락에 따른 해석뿐이죠. 그들이 가진 느낌이 교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사진으로 생각 읽기의 첫 걸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 역사학자(인도사). 사진비평가. 이른바 ‘운동’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인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인도로 유학을 간 것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시민운동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 대표, ‘만원의 연대’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결국 문제는 정치에 있다고 생각하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정의당 등 진보 정당 당원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에서 활동하던 중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몇 차례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소중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게 되었다. 또, 인도 근대사 연구 중 사진도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본격적으로 사진 이론을 공부하여 사진 비평의 길로 들어섰고, 2011년부터 현재까지 월간 《사진예술》에 사진을 통한 인문학 탐구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저술로는 인도사에 관한 것으로 『슬픈 붓다』,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등의 지은 책이 있고,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 인도-파키스탄 분단으로부터 듣는 여러 목소리』, 『성스러운 암소 신화』 등의 옮긴 책이 있다. 

사진에 관한 논문으로는 「영국 사진가 사무엘 본의 세계관과 그의 사진에 대한 맥락적 해석」, 「기억에 대한 담론을 통한 ‘5·18’의 사진 재현: 사진가 노순택의 『망각기계』를 중심으로」가 있으며, 저술로는 지은 책으로 『붓다와 카메라』(근간, 눈빛출판사)와 옮긴 책으로 『사진으로 제국 찍기』(근간, 그린비)가 있다.  




사진 인문학

저자
이광수 지음
출판사
알렙 | 2015-01-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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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에 갇힌 코미디 철학의 작은 역사

 아리스토텔레스는 드라마 비평 책이자 서양 최초의 예술철학 책인 『시학』에서 비극과 코미디(희극)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주로 비극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해석자들은 『코미디에 관한 시학』이 그 후속편으로 존재했었지만 소실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도 비극을 다루면서도 간간히 코미디를 언급하기 때문에 코미디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은 ‘탁월한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인 반면에 코미디는 ‘열악한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귀족주의적인 세계관에 비추어보면, 비극의 주인공은 신화적인 위대한 영웅이거나 도덕적 뛰어난 여주인공인 반면에 코미디의 주인공은 평범한 시민들이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비극적 모방의 대상이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영웅의 행위나 운명인 반면에, 코미디적인 모방의 대상은 “모든 잘못이 아니라 추악(醜惡)의 종류인 우스꽝스러움”입니다. 그는 이 우스꽝스러움을 “고통스럽지도 않고 파괴적이지 않은 실수의 종류”로 정의합니다. 이런 이유로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통해 감정의 카타르시스(정화)”를 성취하는 반면에, 어떤 해석자들에게 의하면 코미디는 동료 인간의 실수에 관해서 나쁜 의도의 선망하는 감정이나 질투심으로부터의 카타르시스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플라톤의 코미디 비판에 대한 일종의 반박으로 볼 수 있어요. 플라톤이 『필레보스』에서 선망하는 자, 즉 ‘심술궂은 시기’를 하는 자는 “그의 이웃들의 나쁜 일들에 대해 즐거워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헤겔은 “코믹한 것이란 자신의 행동을 모순으로 가져와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주체성”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체성(주관성)은 객체성(객관성)에 대립합니다. 객체성이란 전통적인 사회 규범과 인간관계의 윤리를 의미합니다. 주체성이란 이런 전통 규범과 윤리에 대해 회의하는 개인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주체성이란 데카르트가 제시한 코기토(cogito), 즉 생각하는 나를 말합니다. 모든 것을 의심해도 결국 의심하는 나는 확실히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체성입니다. 그래서 주체성은 우선 자신을 규정할 주어진 내용이 없습니다. 근대의 주체성이란 전근대의 공동체성을 해체하고 그 토대가 되는 종교와 도덕을 의심하는 합리적 개인을 뜻하는 것이죠.
헤겔은 웃음에 관한 논의보다는 극으로 제도화된 코미디를 철학적으로 분석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예술 철학)은 주로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헤겔의 예술철학으로 유명한 『미학 강의』에서 코미디는 모든 예술의 종결(완성)입니다. 
헤겔이 보기에, 그리스 비극은 객체적인 인륜성의 실체와 필연성을 기초로 삼고 드라마 인물의 개성과 그 사적인 삶의 깊이를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코미디는 주체적 인격성을 부조리와 그 부조리의 해소를 상세하게 서술하면서 완성시킵니다. 다시 말해 코미디는 비극이 끝난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즉 절대적으로 화해된 유쾌한 마음이 그것입니다. 
코미디는 ‘모순의 즐거운 화해’를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체적인 만족이 핵심이 된다는 뜻입니다. 주인공이 추구한 행위의 결과가 좋지 않고 비극적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는 자기 확신이 핵심인 것이지요. 이것이 아리스토파네스가 대표하는 옛 그리스 코미디의 특징입니다.
코미디의 주인공은 우선 그 자체로 우스운 면이 있어요.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진지하지 않아요. 그래서 코미디의 주인공들은 더 고등하고 보편적인 관심을 갖지 않기에 실질적인 문제에서 이해관계의 갈등을 겪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과 모습에 전혀 의문도 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코미디의 주인공들은 대개 낮은 지위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진지하지 않기 때문에 거꾸로 결과의 희비극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렇게 절대적인 자유정신과 사적인 평온함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러한 자유정신의 분위기 속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 도시국가의 신성한 신들과 동료 시민들을 풍자합니다. 특히 동료 시민들의 우스꽝스러움, 다시 말하면 대중적인 어리석음, 정치가들의 정신없음과 전쟁의 부조리함 등을 폭로하는 데에 주력합니다. 빚쟁이에게 빚 갚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제의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 지하세계로 내려와 비극 작가를 육성하겠다고 결심한 디오니소스 신 등, 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바보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생각한 과업을 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보인 자신과 그가 생각한 과업은 모순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무능해서 그 과업에 실패하더라도 자기 확신이 대단해서 절대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헤겔은 아리스토파네스가 냉담하고 악의적인 조소(嘲笑)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그는 아리스토파네스를 동료 시민의 안녕에 관심이 있는 가장 재능이 뛰어나며 가장 좋은 시민이라고 단정합니다. 반면에 앞에서 언급했듯이 플라톤은 이러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코미디를 심술궂은 시기심에 의한 쾌감이라고 비판했지요.
근대 유럽의 코미디와 고대 그리스 코미디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근대 코미디는 관객들에게 사적인 이해관계와 성격들과 그와 연관된 일상적 부도덕함과 부조리함, 그리고 특이한 행동과 어리석음을 전부 제시합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러한 음모에 담긴 온갖 모순을 보고 웃게 마련입니다. 이런 식으로 아리스토파네스적인 ‘영원한 화해로서의 솔직한 유쾌함’이 근대의 코미디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근대적인 음모의 코미디에서는 노골적인 악, 즉 교활하고 기만적인 자들의 음모, 사기, 비열함이 승리합니다. 음모에 의해 정직하지만 무기력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늘 속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근대 유럽의 코미디는 헤겔이 보기에 구토가 날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유럽은 진정으로 코믹하고 진정으로 시적인 코미디의 유형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한 코미디의 기조(基調)는 그 모든 실패와 불운에도 불구하고 좋은 유머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좋은 유머 정신은 무관심의 확신적인 유쾌함, 그리고 기본적으로 행복한 광기와 어리석음, 마지막으로 개성의 풍부함과 대담함입니다. 이것을 헤겔은 “깊이 있고 성찰적인 유머”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셰익스피어의 코미디 작품들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겔의 이러한 좋은 코미디의 발전과 더불어 미학의 철학적 탐구가 진정한 종결(완성)에 이른다고 봅니다. 코미디의 유머 속에서 자유로운 절대적 주체의 낭만주의 정신의 부정적인 면이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에서 코미디는 예술의 완결입니다. 


열여덟을 위한 논리 개그 캠프

저자
김성우, 송진완 지음
출판사
알렙 | 2014-11-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열여덟을 위한 철학 캠프], [신화 캠프]에 이어, 청소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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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

저자
정범준 지음
출판사
알렙 | 2014-09-2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흑백 TV와 함께한 1956~1980년까지의 시대상을 기록과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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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 저자와의 인터뷰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이 이름을 들을 때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 아니라 코미디언 서영춘이 생각난다면, 당신은 흑백 테레비를 추억할 수 있는 세대다. TBC <고전 유머극장>에서 서영춘이 서수한무~’를 부르며 숨넘어가는 장면에 배꼽을 잡은 기억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이 어릴 적 받고 행복해했던 종합선물세트가 될 것이다.

 

알렙씨는 이번에 아씨에 울고 쇼쇼쇼에 웃던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책 한 권을 출판했다. 저자는 정범준. 어찌 보면 한국 방송사의 이면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저자의 추억과 감성이 물씬 돋아나는 시대물이 아닐까 싶었다.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TV라는 영상 매체는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우리 삶을 보듬고 드러내고 닦아주는 것이었다. 편집자가 느낀 대로보다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대로 쓰고자, 저자와 미니 인터뷰를 해보았다.

 

알렙씨 :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번에 내신 책은 스마트 시대에 컬러 TV도 아니고 흑백 테레비 시대를 다루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이 소재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정범준 : 작가가 되던 무렵에 써보고 싶은 소재가 세 개 있었는데 최동원, 차범근, TBC였습니다. 영웅이었음에도 저평가된 점, 뭔가 아련한 점,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점 같은 게 셋을 관통하는 공통점 같았습니다. 제 취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TBC는 책을 구상한 시점에만 해도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사라진 방송사여서 애틋함이 더했습니다.

알렙씨 : 흑백 테레비는 어떤 아날로그적인 감성이나 옛 기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저자 본인에게 흑백 테레비는 어떤 이미지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말씀해 주세요.

정범준 : 흑백 테레비는 단순히 옛날 물건이 아니라 옛 기억, 옛 추억, 옛 감정 그 자체가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유년의 추억과 감성은 소중하지요. 개인적인 것이든 작가로서의 그것이든 제 취향과 감수성의 8할을 만든 것이 흑백 테레비였습니다. 굳이 한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삶의 첫 기억 정도가 될까요.

 

알렙씨 : 텔레비전과 시대상을 연결시키고 문화사적 측면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아니고, 또 그렇게 딱딱하게 쓰고 있지 않죠. 논픽션임에도 객관적인 기록과 함께, 개인적인 감상을 더 많이 가미한 이유는 뭔지요?

정범준 : 말하기와 보여주기가 있다면 제 스타일은 보여주기입니다. 내가 이런 걸 보고 왔는데 재밌더라, 내가 해설해 줄 테니 직접 보시라, 이런 거죠. 이런 기조를 유지하면서 더러 제 감상이나 의견을 약간씩 삽입하는데 책의 양념 역할도 하는 것 같고, 뭔가 작가로서의 특권같아서 그럴 때마다 즐겁습니다.

 

편집자 : 끝으로, 이 책이 독자에게 무엇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은지요? 반대로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얻어갈 수 있을까요? 독자에게 드리고 싶은 말도 곁들여주세요.

정범준 : 어떤 아련함을 떠올려 주신다면 성공이겠고 기쁘겠습니다. . 그저 잘 읽어봐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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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마케팅 실전전략서> 천정한 지음/ 투데이북스

<출판마케팅 실무노트>이시우.천정한 엮음/투데이북스


마케터는 시장과 고객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가치 있는 상품을 공급하는 사람이다.
출판 마케터들에게 상품은 곧 ‘책’이고, 고객은 ‘독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출판 마케터의 기본은 ‘고객을 파악하는 일’이다.
알 듯 모를 듯 손에 잡히지 않는 독자들을 알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마케터 자신이 독자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노력은 주관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지극히 주관적이고 이기적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될 것이 없다면 절대 지갑을 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떠들어 봐야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책을 사지 않는다. 독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팔고 있는 책을 바라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독자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런 다음,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일종의 고객 집단을 찾아보자. 독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하나의 준거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 그것이 바로 ‘트렌드 조사’다.


고객, 다시 말해 독자를 알면 시장이 보인다. 많은 독자들이 특정 상품이 주는 가치를 소비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에서 어떤 상품들이 소비되고 있는지, 어떤 장점 때문에 고객들이 반응하는지를 살펴보자.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내가 만들고 있는 상품의 부족한 점, 우리 책에는 없는 그 무엇이 하나둘씩 보일 것이다. 제품이 갖고 있는 장애 요소를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다면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더 나아가 표본이 되는 고객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그 사람에게 상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계획을 세워보자.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기호를 알아야 할 것이고, 관심 분야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산다면 왜 사는지, 사지 않겠다고 하면 왜 사지 않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훈련은 마케팅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의 기획 방향을 읽고, 출간 일정을 조율하고, 타깃 독자를 설정하는 것, 그리고 디자인과 제작을 통해 상품성을 높이는 것, 판매 목표 부수를 정하고 독자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 이 모든 작업에서는 기획, 편집, 마케팅 부서의 협업과 소통이 중요하다. 자기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함께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케터는 함께 일하는 출판사의 구성원과 공동의 목표 의식을 가지고 그 목표를 체계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직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일과 부서의 일, 그리고 타 부서의 일이 결코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각 부서원들과 협업을 할 수 있다.


유통 관리, 시장 조사, 홍보 프로모션, 상품 기획, 재무, 조직 관리에 이르기까지 마케터의 일은 많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수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마케터의 업무는 그 하나하나가 전문 영역이고 학습과 경험이 필요하다.따라서 마케터는 조급해하지 말고 한 단계씩 전문성을 쌓아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CGM(소비자 발신 미디어, Customer Generated Media)의 확산으로 예전에 비해 출판 환경이 더 넓어졌다. 이제 독자들은 출판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아예 출판사 없이 책을 만들어 유통하기도 한다. 출판 마케터들은 이와 같은 변화의 움직임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디지털 콘텐츠 퍼블리싱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출판 마케팅에 관한 더 많은 논의와 스터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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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붉은 울음'… 한센인의 영혼을 치유한 시
인제대 인문의학硏 김성리 교수 한센인 할머니 삶 담은 책 펴내
2013년 12월 17일 (화) 14:42:33 호수:152호  11면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시 치유에 대한 인문의학적 접근 통해
대동 이말란 씨와 시·구술 형식 만나
상처와 회한의 60년 삶 11편 시로
문학이 고통을 치유한 소중한 사례


"할머니 말씀 열심히 듣고, 함께 가슴 아파 하고, 이런 삶도 있구나 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김성리 연구교수가 한센인 할머니의 삶을 담은 책 <꽃보다 붉은 울음>(알렙, 1만4천 원·사진)을 펴냈다. 이 책은 '치유 시학'의 관점에서 시 쓰기와 구술을 통해 한센인의 영혼을 치유한 경험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치유 시학은 삶의 문제에서 비롯된 고통을 시를 통해 치료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갖는 무미건조함을 걷어내고 감성을 통해 치유를 모색하는 학문을 말한다.
 
김 교수는 "시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한다면, 실제로 사람이 치유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센인 할머니(이말란, 1927~2009)를 만났다"고 연구 계기를 밝혔다. 김 교수의 연구는 '시 치유에 대한 인문의학적 접근-한센인의 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정리돼 한국의철학회(대표 권상옥)에서 펴내는 <의철학연구(2012, 13집)>에 수록됐다. 김 교수의 논문은 연구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렀다. 여러 학회에서 연락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자체 운영 중인 웹진 'ⓔ시대와 철학'에 치유시학에 대한 원고를 써달라고 요청해 왔다.
 
김 교수는 "처음부터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설형식으로 쓰려 했으면 힘들어서 못 했을 텐데, 웹진에 연재를 한 덕분에 책이 나올 수 있었다"며 "연재 중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들어왔는데, 할머니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한 곳이 알렙출판사여서 거기에서 책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 김성리 교수
김 교수에 따르면, 김해시보건소와 울산·경남한센인복지센터지부에서 시행한 한센인 합동진료를 따라다니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환자를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진료 팀을 따라 한센인 마을을 방문하기를 몇 번. 드디어 대동면의 한 마을에 사는 이말란 할머니가 연락을 해왔다.
 
김 교수와 할머니는 7개 월 여에 걸쳐 매주 두시간 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김 교수가 다가앉으면 할머니는 꼭 그만큼씩 물러났다. 김 교수와 할머니의 첫 대화는 이랬다. "머하는 사람이라고 했노?" "시를 공부합니다." "시 공부하는 사람이 나는 머할라꼬 찾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김 교수가 다시 말했다. "어머니하고 이야기하려고 왔죠." "어무이가 있나?" "네. 고향에 큰오빠 내외와 함께 계세요." 그제서야 할머니가 아주 조금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도 딸이 하나 있다. 아이다. 둘이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의 60년 삶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김 교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고, 함께 울었다. 할머니가 지나온 시절을 시로 읊으면 받아 적은 뒤 다시 읽어주었고, 할머니는 수정을 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해서 11편의 시를 남겼다.
 
이말란 할머니는 1927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녀에 재학 중이었던 17세 때 일본인 대학생 마쓰시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한일 양국의 적개심은 아랑곳없이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갔다. 할머니의 시 '첫사랑 이야기 2'는 그 뜨겁고 애틋했던 사랑을 담고 있다. "마스시타, 포켓에서/ 손수건 꺼내 내 눈물을 닦아주며/ 서로가 위로하고/ 정을 주며 정을 받고/ 둘이가 양 손 굳게 잡고/ 우리의 따뜻한 깊은 사랑"이라는 대목을 읊으며 할머니는 옛 추억에 젖곤 했다.
 
18세에서 19세 사이에 임신과 함께 한센병이 발병했다. 19세 때였던 1945년 광복 직전에 마쓰시타와 헤어졌고, 그해 8월에 마쓰시타의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김해 출신 재일한국인에게 입양을 보냈다. 김 교수는 할머니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마쓰시타가) 아들이 있는 건 알고 갔제. 같은 하늘 아래 있으모 언젠가는 안 만나겄나. 혹시라도 지나가다 마주치면 닮았다 싶어 서로 쳐다는 보겄지. 평생에 한 번은 보겄지." 책에 수록된 할머니의 육성이다.
 
부산고녀를 다녔던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한 한센병과, 헤어진 연인과, 입양 보내야 했던 아들 등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물 한 모금 마시려 해도, 동네사람들은 우물가로 달려와 물통을 발로 걷어차며 못 마시게 했다. 김 교수는 "벌레도 풀이나 이슬을 먹고 사는데, 나는 사람이다 하고 소리 질렀다. 나는 벌레도 아인기라"라며 그 시절을 아프게 회고하는 할머니의 눈가의 눈물을 떠올리며, 목이 메었고, 말을 잇지 못했다.
 
김 교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매주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계속 할머니를 찾아갔고, 전화연락도 자주 했다. 그런데 한창 논문 마무리 하고, 심사받을 준비하느라 한 달 정도 찾아뵙지를 못했는데, 그때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한 번 더 할머니를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그것이 지금도 한스럽다."
 
<꽃보다 붉은 울음>은 문학이 고통에 찬 한 인간의 아픔을 치유한 소중한 사례이면서, 동시에 한 할머니의 유언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중년 신사로 훌쩍 자랐을 아들이 어쩌면 이 책을 읽을 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줄 것을 김 교수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시를 읊으면서 자신의 고통을 치유했다면,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상처를 눈물로 씻어내는 또 다른 치유를 경험하게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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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삶> 출간 기념 북토크 후기

2013년 12월 17일 스폰지하우스_

 

 

 

1. 진행자 김두식 교수는 처음부터 살짝 소외되었다. 이서희 작가와 민규동 감독의 은밀한 우정 때문이다. 이서희 작가는 민규동 감독의 이름을 풀이하며, 곁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멋졌다. 김두식 교수는 살짝 소외되었으나, 그 소외를 즐겼을 것이다. 어떤 기쁨은 자신의 소외됨을 기꺼이 허락한다.

 

2. 김두식 교수와 이서희 작가는 ‘페친’이란다. 김두식 교수는 그를 둘러싼 '페이스북 현상’에 주목하였고, 강렬한 매혹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진행 요청을 받아들였단다. 이서희 작가의 북토크 진행을 한다고 했더니 주위 사람들이 40년 중년의 남성들로 그득할 거라고 하여 걱정하였단다. 그런데, 놀랍게도(물론 시커먼 남성분들도 제법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젊은 여성들이 참여하였다. 난, 그것이 기뻤다. 사실, <관능적인 삶>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이들은 여성일 것이다. 이 책의 위로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합당한 것이다.

 

3.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물었다. 자신 안에 있는 상처 때문이었다. 이서희 작가에게 관능은, 상처를 직면하고 그것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부모의 땅을 떠나 프랑스에서 갖게 된 '작은방'은 오롯이 그의 존재로 그득 채우는 최초의 경험이었고 충만한 행복의 공간이었다. 부유하는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돌아갈 '집'을 배제한 그의 모험은 맹렬하나 고독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집'에 정착했다. 일탈은 끝난 것일까. 아이를 키우며 다시 오랜 상처는 아파오기 시작했고 그는 다시 직면해야 했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보았고 그 세상으로 나아가야 했다. 관능적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4. 민규동 감독은 이서희 작가의 글쓰기를 계속 북돋았다고 한다. ‘너의 연애적 본능'을 글로 마음껏 표현하라고 했단다.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비슷한 지식을 소유하더라도, 어떤 이들의 문장은 다른 빛깔로 생동한다. 이서희의 글은 다를 것이라고 믿었단다. 그리고 마침내 이서희의 글쓰기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곁에서 격려와 위로뿐만 아니라 때로는 강력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단다. 그의 글이 독자를 의식하여 수위를 조절하여 타협하는 것이 싫었단다. 이서희이니까, 그만이 할 수 있는 글쓰기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5. 민규동 감독은 계속해서 이서희 작가의 향후 행보를 주목한다고 했다. 이렇게 당부했다. 작가로서의 자기 검열에 잘 대처했으면 좋겠다고. 난, 그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이서희 작가의 관능이 독자를 고려하여 그 수위를 타협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계속하여 노골적인 서사를 이어가라고. 나도 같은 마음이다.

 

6. 민규동 감독은 언제나 내일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죽음을 깨달았다. 죽을 수 있다. '메멘토 모리’, 언젠가 당신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인생을 허비할 수 없었다. 우린 좀더 농밀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불필요한 아픔에 매이지 말고 더욱 소중한 삶을 욕망해야 한다.

 

7. 관능은 섹슈얼리티로 발휘될 수 있지만, 섹슈얼리티 자체가 관능은 아니다.

  

 8. 이서희 작가는 여성의 삶을 성찰했고 도전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요받는 제한적인 삶, 모성이라는 또 다른 금기를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연애만이 관능적 삶의 전부가 아니다. 관능적 삶은 여러 삶의 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다. 

 

9. 도주한 땅 프랑스에서 이서희 작가는 ‘관능적이다’란 소리를 처음 들었다. 낯선 시선이었지만, 그 시선을 놓치지 않고 충분히 누리려고 했다. 한편, 그는 연애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했다. 연인에게 최선을 다해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충만한 행복을 누렸으며 마지막에는 제대로 정리하였다.

 

10. 성녀와 창녀 프레임은 남성의 자유도 옭아맨다.

 

11. 이서희 작가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와 순결주의자 어머니를 극복해야 했지만, '부모 때문에’란 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몫이 더욱 크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아셔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부모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나쁜 아빠가 나쁜 할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아이들에게 말한다고 한다. 실제 그의 아이들에게는 너무 좋은 할아버지란다.

 

12. 이서희 작가는 모국어로 글을 쓴다. 모국어를 모르는 아이들이 모국어로 엄마를 읽었으면 좋겠단다. 그들은 언젠가 모국어로 읽는 엄마라는 세계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에 살짝 웃음이 터졌다. 

 

13. 관능은 삶을 확장시킨다. 가족이란 경계를 넘어 타자까지 보듬는 삶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삶이 확장되면 사람도 커진다. 그러면 상처는 그만큼 작아진다. 감동적인 통찰이다1

 

14. 그는 비록 미용실에서 '눈썹을 날려 버렸지만’, 사진보다 훨씬 나았다. 그의 목소리는 나의 상상보다 조금 더 매력적이더라. 관능이 존재의 민낯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면, 순수(純粹)야말로 관능의 절정이 아닐까. 오늘 만난 그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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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할머니의 시, 삶을 치유하다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면, 고통도 나의 것이다
『꽃보다 붉은 울음』 저자 김성리

 

『꽃보다 붉은 울음』은 한 한센인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와 시를 기록한 글이다. 제목에서 할머니의 고통이 전이돼 오는 듯하다. 질병, 질병으로 인한 가난, 사랑하는 이들과의 생이별, 죄의식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는 한스러움 등으로 할머니의 생애를 몇 줄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할머니의 마음의 고통은 결코 요약될 수 없을 것이다.

한 한센인이 60년 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삶의 이야기를 시 11편에 담아 담담히 구술하는 동안,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시 글로 옮기면서 김성리 저자는 가슴 먹먹함과 눈물 아른거림을 어떻게 견뎠을까?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것도 오랜 고통의 시간 속에 꽁꽁 묻혀 있었던 상처투성이 마음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가?

 

“할머니의 자작시들, 그리고 저자가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아름다운 시(詩)들은 한센병이라는 단단한 갑옷 뒤에 숨겨진 한 여인의 해맑은 영혼을 비춰주는 투명한 거울이 되어준다. 한하운과 김춘수를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이 노래한 ‘타인의 아픔’은 할머니의 말 못할 아픔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기도 하고, 할머니의 아픔과 우리의 아픔을 함께 어루만지는 따스한 엄마의 손길이 되어주기도 한다.”(정여울, 문학평론가)

 

저자의 담담한 글로도 담기지 못한 할머니의 정서와 필자의 마음을 더 들어봤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어떤 심정이었나요.

 

저를 만난 할머니는 당신의 삶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을 떠나기 전에 마음 한구석까지 비우려 했었던 것 같아요. 60년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마음이 어땠을까요? 할머니는 이야기 도중이나 시를 읊을 때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특히 밤에 혼자 누워 “지난날을 생각하며 시를 지으면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없어서 다음에는 안 한다 해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또 생각하게 된다고 했죠. 할머니는 기를 소진하여 두통이 올 정도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칡넝쿨처럼 헝클어진 자신의 생을 정리하여 반듯하게 뉘어 놓고 가시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아팠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글을 쓰다가 여러 번 멈추고 멍하니 앉아서 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한 줄 써놓고 밖으로 나가서 그냥 걸어 다녔던 적도 여러 번입니다. 심지어 한 편의 글을 쓰는 데 한 달 가까이 걸린 적도 있습니다. 만약, 내가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만났더라도 할머니가 자신의 삶을 드러내게 도와드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아직 살아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마쓰시타(연인이자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할머니가 그 모진 삶을 이어온 동앗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왜 진작 이것을 몰랐을까요? 할머니가 저에게 당신의 삶을 내려놓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할머니를 만나는 내내 아팠던 것은, 할머니의 고통이 저에게 옮겨 와서였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는, 그런 차원의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몰랐다는 자책에서 오는 아픔이었죠. 그리고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의식에서 아마 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눈물입니다.


이 책을 쓴 계기가 할머니의 말씀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자신의 생애 이야기와 시를 남기시려고 한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요?

 

할머니는 한센병이 발병하던 19세 무렵에 이미 연인 마쓰시타(당시 대학생)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 마쓰시타가 일본으로 귀국하자, 미혼모로 아이를 낳았죠. 젖먹이였던 아이를 도저히 혼자 키울 수 없어서 입양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아이를 보낸 거죠. 아들이 장성하면 병든 어미는 말고 일본에서 친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이 아들을 평생 동안 그리워했습니다. 당장이라도 할머니는 알아볼 수 있다고 했죠. 할머니는 아들에게 당신은 “너를 버리지 않았다. 잊지도 않았고, 너를 살리려고 입양 보냈다”, 이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에게 당신의 일을 소설로 쓰고, 그 소설이 일본에서도 출판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만일 아들이나 마쓰시타가 책을 통해 당신을 찾아오게 되면, 병든 몸으로는 만날 수 없으니, 당신이 죽은 후에 출판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가난과 병환으로 오랫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없었던 사람이 시를 쓴다,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할머니의 시는 어땠나요.

 

할머니는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할머니는 자의식이 강하고 자존심도 대단한 분이었죠. 그래서 그분의 삶은 더 처절했습니다. 할머니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 어느 것도 할머니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3번에 걸쳐 생을 마감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은인들의 손길에 구조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만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시를 쓴 것은, 발병 이후 당신의 의지로 행한 첫 사건이었습니다. 저와의 만남 자체, 그리고 저와 함께한 시간들은 할머니에게는 사건이었죠.

 

『꽃보다 붉은 울음』이라는 제목에는 할머니의 슬픔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가장 화려하고 예쁘게 남아 있는 10대는 꽃처럼 살고 싶어 하던 소녀였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넉넉한 살림이어서 당시(일제 강점기) 부산고녀에 다녔었죠. 일본인 대학생이 1년 넘게 구애하며 쫓아다닐 정도로 고왔고 순수했습니다. 그 10대가 끝날 무렵부터, 할머니의 삶은 질병으로 인해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할머니의 감정인 슬픔, 고통, 비애, 분노, 절망, 회한 등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했죠. 그런데 할머니는 시에서 당신의 삶을 “핏자죽이 어린 길”이라 했습니다. 핏자죽 어린 길을 걸어가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요?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말할 때 “피를 토한다”라고 하지요. 할머니의 울음은, 피를 토하다 못해 붉게 물들었을 울음입니다. 그 울음은 60년의 시간을 지나서 시로 재현되었습니다. 할머니의 시에는 60년의 시간과 60년의 슬픔과 60년의 눈물이 담겨 있죠. 할머니의 시는 할머니의 삶입니다. 저에게 할머니의 삶과 시는 꽃보다 아름답고 꽃보다 더 붉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목을 “핏자죽이 어린 길”로 하고 싶었는데, 제목이 너무 선명하여 『꽃보다 붉은 울음』으로 했습니다. 


편집자는 저에게 『꽃보다 붉은 울음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은 미당 서정주의 시 「문둥이」에서 직접 표현된 것이라서 많이 망설였습니다만, 할머니의 삶을 그보다 더 잘 나타내는 것은 없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문디’라는 표현은 경상도 지역에서 흔히 하는 말이지만, 결코 (한센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 중의 하나가 ‘문디’입니다. 그런 시에 나온 표현이기 때문에 할머니의 삶에 더 적합한 표현으로 고쳐서 제목으로 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생애를 말로써, 시로써 풀어놓고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과연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까요?

 

할머니가 처음에 구술한 시에서 당신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손톱만한 벌레만도 못한’ 사람으로 비하했습니다. 그렇지만 만남이 지속되는 동안, 온몸의 기를 소진하여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시를 생각하고, 저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시를 생각하는 그 과정 자체가 스스로 자기 삶의 매듭을 푸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시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에게 시를 읊어주고 그 시를 다시 저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할머니는 과거를 정리하고,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부정했던 그 과거의 시간들을 서서히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할머니 이야기는 잠시 두고, 본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간호학과를 나와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다시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 꿈이 두 개였습니다. 시인이과 간호사. 중학생 때 스스로 꿈을 정리했습니다. 시를 쓰는 간호사가 되기로. 근데 간호사는 되었는데 시인은 되지 못했네요. 시를 공부하고 시의 치유력을 발견하면서 가장 먼저 한센인을 떠올린 건 아마도 간호사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봅니다.

 

종합병원에 근무할 때 정형외과 병동에 5년 정도 있었습니다. 그때 치료는 끝났으나 온전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더 큰 충격은 퇴원을 하신 분 가족의 초대로 그 분 댁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오랜 병상생활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아내와 어린 딸을 사랑했던 환자가 거의 폭군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병원의 아빠 병상 옆에서 돌을 지내고 간호사실을 들락거리며 귀여운 말썽을 일으키던 아이는 겁에 질려 아빠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아내는 죽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환자분은 내내 침대에 누워 스스로는 휠체어에 탈 수도 없고 대소변도 자유의지로 처리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무서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족과 휠체어에 의지해 퇴원하던 6살의 진아, 치료 후의 삶이 더 고통스러웠던 많은 환자분들은 저에게 지금도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그 분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할머니를 찾아간 것은 그 분들과 달리 한센인들은 추방과 격리, 그리고 감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답이 좀 길어졌네요. 제가 알고 있는 의학적인 지식과 인문학적인 시선에서 볼 때 한센인들만큼 고통스러운 삶은 없을 겁니다.

 

독자가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이 책은 한센병을 앓았던 한 여인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온전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느 삶과 같이, 할머니의 삶을 존중하고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이를 품에 안고 키우면서 살고자 합니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당연한 일이죠. 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는커녕, 평생 가슴에 묻어야 하는 비밀로 간직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삶입니다.


어머니로 살았지만 어머니로 살 수 없었고, 아내로 살았지만 여자일 수 없었던 분입니다. 배우처럼 자신의 삶을 낯설게 살다가 생애 마지막 나날에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분입니다. 시 쓰기라는 도구를 통해서였지만, 그것은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진짜 내면을 들려주고자 한다면, 자연히 소통의 언어는 따라올 것입니다. 할머니에게는 그것이 시였고, 삶이었습니다.

 

가장 딱딱한 질문이라 가장 끝에 물어보네요. 지금 연구 주제로 삼은 “치유 시학”에 대해서 말해 주세요.

 

아뇨, 딱딱한 질문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죠.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삶의 문제를 시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치유 시학”입니다. 시를 읽거나 시를 쓰거나 또는 서로 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의 문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고통의 기억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고 위로를 받아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하게 살아나지요. 하지만 그 기억이 현재 나의 삶을 흔들지 않으면 그 고통은 치유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완전한 치유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고통의 기억을 안고 사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치유의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제가 시를 공부하니 시가 치유의 길을 인도하는 하나의 별이 되는 것이지요. 만약 춤을 잘 춘다면 춤으로, 노래를 잘 부르면 노래로 치유의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숲길을 걷기만 해도 마음이 얼마나 편안해집니까. 시만 우리들의 삶을 치유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치유되지 않는 고통도 없습니다. 어떤 기억이, 어떤 경험이 계속 괴로움을 준다면, 그것들을 피하지 마세요. 모른 척하시지도 말구요.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면 고통도 나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맨 얼굴로 나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으니까 그때 시를 읽어도 좋구요, 노래를 들어도 좋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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