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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과 책/내용 속으로

바르트의 풍크툼 : 기호가 넘치는 세계에서 찔린 아픈 상처 <사진 인문학>

<사진 인문학>

바르트의 풍크툼

기호가 넘치는 세계에서 찔린 아픈 상처




사진은 왜 인문학의 보고인가?



 벤야민과 함께 사진 담론의 초석을 깐 이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이다. 바르트의 사진 담론은 그의 신화관에 기초한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신화로 본다. 그 신화는 일정한 구조에 의해 지배되고, 그 구조는 특정 의미를 지니는 기호로 점철되어 있다. 따라서 바르트는 현대인이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제도와 의미가 ‘자연스러운’ 혹은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 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현대 사회에서의 종교, 혼인 여부, 성적 취향, 학벌 등은 자연스러운 것 즉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러한 것들은 단지 사회 내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특정 사회 내에서만 특정 의미를 가질 뿐이다. 사진작가가 수염을 기르는 것은 자연스럽고, 공무원이 수염을 기르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 아버지와 아들이 술은 같이 마셔도 담배는 같이 피울 수 없다는 것 등은 단순한 통념일 뿐이다. 


 바르트는 동시대 프랑스 사상가인 사르트르나 카뮈가 그랬듯이 마르크스주의에 기초를 둔다. 그는 특히 노동자 계급에 대해 우호적이었지만 부르주아 계급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었다. 그는 둘 간의 관계를 그들이 각각 즐기는 프로레슬링과 연극을 놓고 분석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신화학』을 통해 프로레슬링은 철저히 잘 짜인 공연인데도 노동자들은 그것이 일주일에 몇 번씩 공연장에서 행하는 쇼라는 것을 알면서 즐기기 때문에 솔직하다고 했다. 반면, 연극은 실제 생활처럼 보여주는 것일 뿐, 철저한 허구인데, 자신을 거기에 몰입하고 일체화하는 부르주아지들의 태도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했다. 바르트가 이 둘의 비교를 통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실제 생활 속의 사건들과 쇼, 오락, 연극, 문학 등과 같은 대중문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사건들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이러한 견해는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가 연극을 ‘거리 두기’로 규정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바르트는 브레히트의 연극은 프로레슬링에서와같이 관객이 자신의 연기에 몰입하거나 사로잡혀 자신을 잃어버리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부르주아 예술의 가장 큰 한계는 관객에게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믿게 하고, 그에 따라 기호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허구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참다운 연극은 배우든 연출자든 연극이 허구라는 사실을 — 막간에 불을 끄지 않고 무대 정리를 한다거나, 해설자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 관객에게 알려줘 허구와 실제 사이에 거리를 두게 해야 한다고 했다. 바르트는 배우가 스스로에게 감동함으로써 관객을 감동시킨다는 낭만주의적 계몽주의적 진정성을 배격하려 한 것이다.


 바르트의 이러한 예술관은 세상이란 명료하게 읽을 수 없다는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료함이란 하나의 계급적 태도 즉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계급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같은 계급에 속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알리는 기호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에서 부르주아지 권력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 거기에 속한 문필가들이 그 중요성을 부여하면서부터였다. 그에 의하면, 명료함이라는 것이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나가는 습관보다 더 보편적이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특질인 것도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사회과학의 구조나 인문학의 기호를 따라가는 것은 부르주아지가 영원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세계에 동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관습적으로 되는 명료함이라는 함정을 피하는 방식으로 글의 비가독성(非可讀性)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어렵게 글쓰기를 해서 쓰는 사람의 뜻이 일괄적으로 읽는 사람에게 스며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읽는 사람이 각자 느낌대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에게 중요한 것은 기호가 주는 패러다임으로부터 확보되는 의미를 차단하는 것이다. 사진 비평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해석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비평가들이 예술에 대해 통렬하게 가하는 복수라고 한 것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그 안에 ‘너’와 ‘나’가 다르고, ‘너’와 ‘나’가 공유할 수 없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바르트의 풍크툼(punctum) 개념은 여기에서 나온다. 



 풍크툼은 화살처럼 뾰족한 도구로 찔릴 때 생기는 상처나 그 흔적. 뭐라고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돌발적인 아픔이다. 분석할 수도, 예견할 수도 없는, 그러면서 똑같이 반복해서 느낄 수도 없는 것이다, 작은 구멍이고 조그만 얼룩이면서 작게 베인 상처다. 꼭 단 한 명에게만 적용되는 찔림, 그 풍크툼의 존재가 있어서 사진은 테크닉도아니고, 실재도 아니며, 객관도 아닌 것이 된다. 그 소통 불가능한 우연의 세계가 사진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자 사진이 인문학의 보고가되는 개념이다. 


 바르트가 풍크툼을 결정적으로 알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의 죽음과 그것 때문에 생긴 우울증 때문이었다. 바르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 어떤 사진도 그가 사랑했던 어머니를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절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다섯 살 아이 시절 사진을 발견한다. 그는 실제 본 적이 없는 그 다섯 살 난 아이 사진 속에서 어머니의 모든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의 그 사진은 그가 아닌 다른 이 즉 우리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 했다. 양자는 논리적으로 전혀 소통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 사진으로부터 실증적인 의미의 객관성을 성립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우울증에 시달린 바르트는 언어를 가벼운 것으로, 이미지를 정지시켜야 하는 것으로 본 타고난 반항아였다. 그는 보편자를 위해 개별자가 희생해야 한다는 그 숭고한 시대적 철학적 미(美)에 처절히 반항하였다. 속박과 의례를 싫어하고, 보편성을 참을 수 없었다. 현대 사진은 바르트가 말하는 바로 그 탈보편화 안에서 꿈틀거린다. 그것이 그가 말한 풍크툼의 세계이고, 사진 세계의 생명력이다.



오래된 사진은 가끔 찔린 아픔을 준다



 모든 사진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최민식의 사진은, 적어도 내게는, 장면 하나하나가 풍크툼으로 차 있다. 물론 보는 이마다 환원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장면이 다르고, 찔러 오는 아픔의 정도가 다를 것이지만. 또 같은 사진이라도 볼 때마다 다르겠지만, 최민식의 사진은 그가 살아온 시대를 같이 살아온 한국인에게 아픈 찔림을 많이 준다. 그 안에서 때로는 나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찾기도 한다. 그의 사진이 처절한 것은 그 돌아갈 수 없는 기억의 시간이 이 자리에 재현될 수 없고, 그런 아픔은 나만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 가운데 아기를 업은 아낙이 지쳐 계단에 기대어 자는 모습을 담은 것이 있다. 그 사진에서 작가는 한 쪽 발뒤꿈치에 걸쳐 있는 듯 떨어져 있는 저 고무신에서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했다. 그런데 난 저 어머니가 입은 몸빼가 폐부에 박혀 아프다. 그 몸빼를 통해 20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만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른 경험으로는 환원할 수 없고, 오직 나 자신에게만 존재하는 풍크툼의 세계다. 


 최민식의 사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줄곧 ‘휴머니즘’이라는 한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해온 그의 오래된 사진은 그때 그 시절, 나 혹은 내 어머니 혹은 내 할머니가 그 자리에 있었음직한 모습을 우연 속에서 각자에게 재현한다. 어느 땅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살아온 그 모습이 나를 흔들고 찌르는 풍크툼의 존재로 체험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 최민식이 꿈꾸는 휴머니즘은, 적어도 한국의 독자들에게는,여러 개의 우연한 풍크툼들로 완성된다. 


 사실, 사진은 일반적인 기호들로부터 철저히 독립된 풍크툼의 세계로만 읽힐 수도 없고, 그렇게 읽혀서도 안 된다. 사진 안에 여러 가지의 객관적 의미로 가득 찬 기호들이 있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 안에는 당시 사람들이 입던 옷 모양도 있고, 의례 방식도 있으며, 감정 표현 양식도 있다. 배경이 되는 집과 거리의 배열 구조도 있고, 크게 보면 산과 강의 자연 질서도 있다. 그 위에 빛이 들어오고 작가가 구도를 잡아 포커스를 맞추면서 작가의 의도가 전달된다. 매우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정서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 혹은 의도와 관계없이 — 여러 사람에 의해 공유된다. 이것이 스투디움(studium)의 세계다. 최민식의 사진은 그 도덕적이면서 합리적인 일반적 감성의 원천, 스투디움을 매우 풍부하게 갖는다. 초고속으로 달려오느라 그 시간을 잃고 사람 사는 세상마저 잃어버린 많은 한국의 중년층이 그의 사진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그 스투디움이 그의 사진 안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잃어버린 시간의 재현 속에서 각자가 받아들이는 풍크툼이 담당하는 몫은 또 다른 부분이다. 



 사진가 쿠델카(Josef Koudelka, 1938~)가 사랑한 대상은 떠돌이 집시들이다. 그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왔든, 나라에서 쫓겨났든, 삶에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다. 여기에 쿠델카는 관조하는 듯한 태도로 대상에 접근한다. 그래서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대상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참여나 개입의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소원한 거리에서 뭔가를 느끼게 된다. 아련함이기도 하고, 쓰라림이기도 하고, 아림이기도 하다. 그것이 나에게 쿠델카의 사진이 갖는 파토스(pathos)이다. 사내의 벗겨진 이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본다면 그것이 나에게 풍크툼이다. 자갈밭에서 그럴 수 있고, 낡고 헤진 티셔츠에서도 그럴 수 있으며, 구린내가 풀풀 날 것 같은 신발들에서도 그럴 수 있다. 쿠델카의 작품들에서 나는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돋아난 상처를 느낀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려니하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풍크툼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생성되는 느낌을 공유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일 뿐이다. 


 인류학자들이 수행하듯, 대상의 삶에 특별히 참여하여 뭔가를 말 하려 하지 않아도, 뭔가 제시하지 않으려 해도, 털어놓을 수도 털어놓고 싶지도 않은 불가사의한 슬픔, 그 풍크툼의 세계를 쿠델카의 사진에서 읽는다. 우리가 풍크툼을 간헐적으로 그렇지만 깊은 한숨 속에서 공유한다는 것은 사진이라는 것이 애초에 그 안에 담긴 사건을 한때 담아두던 그 시간 안에 정지시켜 버리는 속성을 강하게 갖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이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근거는 일정하지 않다. 그것은 보통 사진이 그 자체 언어에 직접 개입을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것인 만큼 모호함의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에 따라 기억을 훨씬 넓고 쉽게 공유하도록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사진이 갖는 주요한 고유 특성이다. 그래서 기억은 기본적으로 기록이고, 역사며, 사진이 갖는 고유의 성격과 궤를 같이 할 수밖에 없다. 기억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면서 불안하다. 그런데 사진은 그런 기억만큼이나 혹은 더 불연속적이다. 사진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기억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 개개의 기억이라는 것은 너무나 어설퍼 공공적인 기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사진을 통한 기억이 공공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 빈 공간이 너무 크고 막중해서 사실 집단으로 만들어진 특정 사진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사진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존재는 개개의 기억뿐이다. 사사로운 개인 기억의 세계가 폄훼돼서는 안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바로 그 역할, 남들과 다를 수 있는 매우 파편적이고 불완전한 개인만의 기억을 사진이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에서 오래된 사진이 갖는 풍크툼의 세계가 열린다. 모든 사진은 시간 속에서 오래된 사진이 된다. 그래서 오래된 사진에서 풍크툼은 많은 이에게 만연된다. 


 오래된 사진이 주는, 그 어떤 예술도 행해 내기 어려운, 대중 예술로서의 존재 가치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오래된 사진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작동하게 하는 것이라서 논리나 이치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열어준다. 그러니 오래된 사진이 주는 풍크툼은 구성미나 조형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유명한 사진가들이 남긴 것이든, 허름한 앨범 속에서 찾은 것이든, 재개발 구역의 허물어진 아파트 계단에서 만난 사진이든, 오래된 사진은 가끔 찔린 아픔을 준다. 사조가 어떠하든, 철학이 어떠하든, 기록의 가치가 어떠하든, 사진가의 역사적 위치가 어떠하든, 존재 자체로서 이미 사진 예술의 경지에 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진계의 오래된 1세대 사진가들, 강운구, 육명심, 주명덕, 김응식, 정범태, 김녕만 등이 남긴 마을, 장터, 가족, 논밭, 가게, 도심의 풍경 속에서 작가의 의도나 메시지를 해석하는 것은 한정적이다. 그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그 오래된 사진들이 많은 우리들에게 찔림으로 소통을 이루고 그 안에서 잃어버린 인간 지향의 세계를 이어주는 것일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현재에도 있다. 2000년대 한국 사회에서 들끓은 저항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을 그리워하는 슬픔이기도 하다. 사진가 정택용이 서울 외곽의 한 노동 현장에서 한 줌도 되지 않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국가와 자본에 대해 일으킨 반란의 목소리를 재현한 사진은 적어도 나에게는 진한 찔림을 준다. 그 저항은, 바르트가 말하였듯, 특정한 의미를 지니는 기호의 구조에 대한 저항이다. 주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회에서 행하는 의미가 상식적이고, 노동자·농민 등 소외 계층이 하는 ‘짓’들은 몰상식한 것으로 파악하는 세상에 대한 몸부림이다. 정택용은 그러한 기호의 놀음에 대해 항거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사진은 언어적으로든 시각적으로든 세계에 대한 표상을 이데올로기적 맥락 속에서 위치시키는 어떠한 내포도 직접 갖지 않는다. 다만 지시할 뿐이고 그 안에서 외연과 내포의 의미를 각자 느낄 뿐이다. 그래서 정택용의 목 없는 노동자 사진은 이 땅에서 1980년대 야수의 세월을 지내온 사람들에게 끝없는 슬픔의 그리움을 준다. 그 아픈 찔림의 상처, 그것은 목이 떨어져 나간 대상의 처절함으로부터 느낄 수도 있고, 지금은 우리네 식탁에서 찾기 어려운 사진 속 스테인리스 국그릇에서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이 풍크툼이다. 풍크툼, 그 은닉의 그리움이 이데올로기 담론의 홍수보다 훨씬 더 아프다. 사진이 갖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택용, 2006


 그 아픈 찔림의 상처, 그것은 목이 떨어져 나간 대상의 처절함으로부터 느낄 수도 있고, 지금은 우리네 식탁에서 찾기 어려운 사진 속 스테인리스 국그릇에서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이 풍크툼이다. 풍크툼, 그 은닉의 그리움이 이데올로기 담론의 홍수보다 훨씬 더 아프다. 사진이 갖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 인문학

저자
이광수 지음
출판사
알렙 | 2015-01-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사진에 대한 권력을 비판하고, 인문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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