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위의 새



배이유 소설


 

배이유 지음|260쪽|12,000원

2015년 12월 10일|ISBN 978-89-97779-57-4 03810




불가능한 꿈을 꿈으로써 이 악몽에 균열을 내기 위해 작가는 이 세계가 부화시키지 못한 세상의 모든 알들을 과감히 품어 낸다. 가위가 새가 되는 연금술을 통해 새가 없던 새들의 섬에 새들을 탄생시킨다. 그렇게 부화된 퍼즐 조각들의 애잔하고도 유려한 비행이 최종적으로 직조해 낸 장면은 이렇다. 사람은 새가 아니지만 사람이야말로 지상에 발붙이고 사는 한 마리 새라는 진실, 혹은 아직 꾸지 않은 꿈.  - 김현영(소설가)

퍼즐 같은 삶을 채워 주는 한 조각 꿈

부화시키지 못한 세상의 모든 알들에 대한 끈질긴 희망



2014년 아르코 문학창작 기금 지원작으로 선정된 배이유 작가의 첫 소설집에는 ‘젊디젊은 문학적 자아’의 포부가 담겨 있다. 세상의 비루함과 낡음에 대해 작가는 끈질긴 희망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독자가 꾸어야 할 꿈을 대신 꾸어주는 듯하다. 그것이 부화시키지 못한 세상의 모든 알들에 대한 작가의 구출 전략이다.

배이유 작가는 젊지 않은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하였다. 2011년 <한국소설>을 통해 등단해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지면에 소설을 발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인생의 중반에 소설 쓰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이후 발표한 몇 편의 단편소설들을 묶어 이번에 첫 소설집으로 낸 것이다.

누구도 한 권의 책으로 작가를 규정하지 않는다. 한 편의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저마다 고유한 목소리와 시선을 가진 다른 작품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퍼즐 위의 새』에 실린 각각의 단편들은 한데 뭉뚱그려 일종의 연작소설로 음미할 만한 요소가 있다. 소설에는 어떤 극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를 일관되게 ‘끈질긴 희망’으로 보여준다. 극한/무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의 멘탈은 붕괴된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상이 언제 허공이 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세계이다. 견디며 버텨낼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까? 작가는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그러니 자기가 길을 내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길은,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답은 모른다,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그러니 자기가 길을 내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입니다. 안전하다 생각하며 발을 딛고 있던 땅이 언제 허공이 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견디며 버텨낼 수 있는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다면 살아가기가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요.(작가 인터뷰)


물론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희망을 말하지, 꿈을 말하고자 하지 않았다. 새는 지상의 삶을 견디지 못한다. 인간도 지상에 발붙이지 않고 허공을 날아다닐 수 없다. 소설가 김현영은, “사람은 새가 아니기에 지상에 발붙이고 살아야만 한다”고 하면서, “그러나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상은 어떤 세계인가”라고 묻는다. 배이유 작가의 작품에서 그려지는 이 지상의 세계는 알 대신 핵을 부화하고, 열매 대신 싸가지 없는 덩굴만 창궐시킨다. 새들의 섬에는 새가 없고, 인간의 땅에는 인간이 없다. “꽉 맞춰진 퍼즐”처럼 완벽하게 “낡고, 지루하고, 비루하고, 상투적인 악몽”과도 같은 이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어떠한가? 세상의 비루함과 비참함에 대해 작가는 이 세계가 부화시키지 못한 세상의 모든 알들을 품어 내는 전략을 짠다. 가위를 새로 만드는 연금술을 시연하고, 새가 없던 새들의 섬에 새들을 탄생시킨다. 인간이 만들어 낸 세계는 알들을 어미에게서 떼어놓지만, 작가가 만들어 낸 불가능한 꿈에서는 울부짖는 아이를 가만히 품어 준다.


그렇게 부화된 퍼즐 조각들의 애잔하고도 유려한 비행이 최종적으로 직조해 낸 장면은 이렇다. 사람은 새가 아니지만 사람이야말로 지상에 발붙이고 사는 한 마리 새라는 진실, 혹은 아직 꾸지 않은 꿈.(소설가 김현영)


변신. 그건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문학에 대한,

나에 대한 끈질긴 희망이다.


『퍼즐 위의 새』에는 수록 작품마다 새 이미지가 가득하다. 새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듯, 새는 구속을 벗어난 자유, 현실을 벗어난 이상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새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일상의 탈주를 꿈꾸며 자유롭고 싶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는 일상이 비루함을, 현실에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고 있음을, 상투적인 악몽 같은 세상임을 고발하고자 함일까? 작가는 새에 특별한 알레고리를 넣지 않았다고 말한다. 배경 혹은 소도구나 장면 전환처럼 새가 선택되었을 뿐이라 한다. 그렇지만 왜 하필 새인지에 대해서는, 그저 호흡처럼 딸려 나온 것이라 한다. 작가가 갖는 이야기의 원형,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원초가 새가 아닐까.

또, 『퍼즐 위의 새』는 여느 작품과는 다르게 형식적으로 특이한 시도를 한다. <작가의 말>에는 첫 책을 내는 작가의 고민이 진솔하게 담기는가 하면, <작품을 읽는 방법을 요리 레시피>처럼 제시한다. 「창궐」이란 작품은, 결말만 달리해서 「창궐2」로 수록한다. 문학에 대해 진지함을 갖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파격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것은,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영화와도 다른 낯선 세계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입구도 여러 개, 출구도 여러 개인 ‘주름으로 풍성한 미로 같은 풍경’을 독자 앞에 내보이고 싶어요.(작가 인터뷰)


라는 말처럼, 끊임없는 변신의 소산이라 여겨진다. 배이유 작가는 작가 소개의 말미에, “변신. 그건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문학에 대한, 나에 대한 끈질긴 희망이다.”라고 덧붙여 놓았다. 형식적인 시도의 파격은 의도에서가 아니라 결과를 승인함으로써 완성된다. 즉 그것은 독자들의 전유물도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문학이 위대한 힘을 갖는 것이다.



『퍼즐 위의 새』로 즐기는 레시피

새(bird) 버터오븐구이와 파스타 알리오올리오


1. 책을 펼친다. 주재료로 할 새를 끄집어낸다(새의 종류는 다양하니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단, 방사능에 오염된 새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2. 새의 목을 누르고 숨통을 끊은 뒤, 깃털을 뽑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어 깨끗하게 손질한다(이때 종지에 신선한 피를 조금 받아둔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섞는다).

3. 2의 새에 버터를 발라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오븐에 넣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익힌다.

4. 한 움큼의 파스타와 손이 가는 대로 책의 낱장을 국수처럼 가늘게 찢어 끓는 물에 약간의 소금을 넣고 알맞게 삶는다.

5. 납작하게 편으로 썰어둔 열 개의 알리오(마늘)를, 마늘 크기로 뭉쳐놓은 문장들과 2의 고춧가루 피와 섞어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둘러 마늘의 노란 즙이 배일 때까지 적당하게 익힌다. 여기에 잘 삶아진 파스타와 파스타 삶은 물을 넣어 같이 살짝 볶는다.

6. 집게로 파스타를 건져 파란 도자기 접시에 나선형으로 담는다. 거기에 조각달처럼 자른 토마토 서너 개를 올리고 책 속의 글자를 하나하나 잘게 뜯어 파마산 치즈와 함께 뿌려준다. 마지막에 바질 한 잎을 보기 좋게 장식한다.

7.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먹으면 된다. 포크가 거추장스럽다면 포크 대신 과감하게 다섯 손가락으로 집어 올리면 더 좋다. 손가락에 묻은 검은 글자들은 기름과 함께 빨아먹는다. 새 버터구이는 되도록이면 아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뜯어 야생적으로 먹는다.


작품 소개


『퍼즐 위의 새』에는 모두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엄밀히 말하면 「창궐2」가 「창궐」과는 결말이 다를 뿐, 전개까지는 같으므로, 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니 모두 9편이다. 작품마다 고유의 소재와 각기 다른 주제가 있으니, 이를 연작소설이라고 엄밀히 말할 수는 없다. 일관된 주제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세계가 나오지만, 굳이 묶자면 공통된 하나의 공간으로 모을 수 있다. 즉, “부조리한 폐쇄된 공간에서의 인물들의 고투”라는 점이다.

「분홍 사다리」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고 표현한 이육사의 시구를 떠올릴 만하다. 전체적으로 암울한 상황, 미로 같은 동네에서 살풋 무지개처럼 떠올린 하나의 꿈 같은 이야기이다.

「압정 위의 패랭이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하였다. 만일 해운대 옆에서 끔찍한 원전 사고가 일어난다면…… 하는 가정에서 시작하였다. 인간의 삶, 인간의 생명은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런 뜻에서 ‘압정 위의 패랭이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압정 위에 패랭이꽃이 필 수 없다. 세운다면 그것은 기적일 것이다. 사람들 하는 일이, 모두 아무 죄의식 없이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저지른다. 결국 그것이 파국을 이끈다. 소설에서는 원전 사고가 난 이후, 사고 현장 인근 마을에 ‘어쩔 수 없이’ 머물고 있는 인물들을 그린다. 그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미 새가 버린 (부화되지 못한) 알, 수확물을 내지 못하는 죽은 땅이다.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암흑의 핵심이며, 그 암흑의 핵심은 우리 자신을 괴물로 만들고 있었다.

「조도에는 새가 없다」에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 나온다. 조도(鳥島) 즉 새섬은, ‘사람들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섬’이란 안내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도에는 새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새가 아니듯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게 제일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그러나 인간은 가슴속에 ‘작은 새’를 품고 살아도 결국 지상에 살아야만 한다. “인간은 아직 갈 길 몰라 웅크리고 있는 작은 새”를 생각할 수밖에.

「창궐」은 영원히 계속되고 있는 장마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인간성의 비루함을 그리고 있다. 39일이 넘도록 기나긴 비에 감자의 뿌리는 열매가 되지 못한 채 “싸가지 없는 새파란” 덩굴만이 “창궐”하고 있다. 다니와 레니는 집에 갇힌 채 몇 마리의 동물들과 식량과 땔감을 조금씩 조금씩 죽여 나가고 있다. 다니가 어렸을 때부터 육식을 금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물들의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 이제 갇혀 버린 공간에서 서로의 육신밖에 뜯어 먹을 길이 없게 되자, 소, 염소, 등속은 하나하나 인간의 식량이 되어간다. 더 이상 열매 맺지 못하는 감자 뿌리, 더 이상 불을 피우지 못하는 장작더미,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갇힌 공간에서 레미와 다니는 서서히 무너져 간다. 「창궐」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이 끔찍한 악몽은 결국 환몽으로 바뀐다. 낡고, 지루하고, 비루하고, 상투적인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독버섯을 씹는 것. 숨이 넘어가기 전 덤으로 환각을 본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늪으로 빠져듦과 동시에 절벽에서 떨어지는 느낌 그리고 떠오르는 느낌이 서로 맞부딪치며 같이 온다. 그럼에도 불구의 감자 줄기와 잎은 거대하게 퍼져 돌집을 지배했다.

작가는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서 기본 모티프를 가져왔다. 소설 속 공간은 39일 동안 내리는 종말론적 풍경이다. 세상 모든 것이 홍수로 다 지워지고 지구상에 단 하나 남은 8부 능선의 기이한 돌집에서 벌어지는 절망적인 언어와 몸짓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날로 시드는 두 명의 인간과, 황소, 염소, 사냥개, 이와 달리 날로 번성하는 검푸른 이끼와 버섯, 감자줄기와 잎으로, 희화화된 어두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비관적 상황과 다르게 문체는 시(時)적인 호흡으로 간결하면서 무겁지 않다. 인물은 찰리 채플린 식의 무성영화 시대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퍼즐 위의 잠」은 생계 때문에 부업/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세 아이의 엄마 이야기이다. 문단 구성을 퍼즐 조각처럼 잘게 나누어 과감한 형식을 시도한 점이 돋보인다. 남편은 잠시 일자리를 잃은데다 PC방에나 전전하고, 젖먹이를 포함해 아이는 셋이나 돼서 생계가 막막하다. 퍼즐 1,000조각 한 판에 이만 원. 도저히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아이 엄마는 “퍼즐 위에서 깊은 잠”에 들려고 했다가, 결국 아이의 소리에 깨어난다.

「옛날옛적 수족관에는」에서는 15년 넘게 멀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의붓남매의 이야기를 다룬다. 남자의 아버지와 여자의 어머니가 재혼하여 남매가 되었다가, 새어머니가 죽고 또다시 새어머니가 들어왔다. 이윽고 남자의 아버지도 죽자, 새어머니는 둘을 종처럼 부렸다. 티켓을 끊는 다방에서 허드렛일을 시키다가 여자가 성장하자 커피 심부름을 강요한다. 새어머니의 폭압과 횡포, 그리고 매질을 견디다 못해, 둘은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를 죽였듯이, 새어머니를 죽이기로 공모한다.이제 여자는 15년 만에 만난 오빠이자 연인에게 자신이 품었던 연정을 고백한다. 여동생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던, 그렇지만 한사코 밀어내야만 했던 오빠 역시 옛 기억을 떠올린다. 옛날옛적 티켓 다방의 수족관을 다시 찾으면, 자기가 동생에게 주었던 반지를 찾을지 모른다.

「그린그레이」는 어머니와 아들의 엇갈린 관계를 연극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푸른 눈의 군인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여 낳게 된 자식을, 어머니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로 키워 낸다. 그렇게 모자는 어렸을 때부터 헤어졌는데, 할머니(자신이 어머니라 불렀던)의 죽음 이후, 어머니(실제)를 찾아 간다는 내용이다. 그린그레이는 아들의 눈이 회색과 푸른 색이 섞인 눈동자이라는 설정.

「너라는 책」은 책과 죽은 연인의, 죽어도 죽지 않은, 살아남은 이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Sasa’의 함수를 이미지로 풀어본 작품이다.

「포옹」에서 어느덧 중년이 된 사내가 깊은 산골짜기의 채석장을 찾아가고 있다. 배경은 내내 버스 안이다. 버스를 타고 산굽이를 돌아가는 과정은 사내의 의식의 미로와 같다. 갓난아기 때 버려진 그는 기억 속의 여자들을 현재로 불러내어 아픈 과거와 조우한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버스 안을 지배한다. 그의 의식을 끊임없이 짓누르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과거에 버려졌던 자신의 한 맺힌 절규이자 분신. 그는 두려움에 떨었던 자아와 대면하고 포옹한다.

「창궐2」는 「창궐」과 같은 전개, 다른 결말을 가진 작품이다. 작품이 일의적 해석이 아니라 다의적 해석이 가능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편집적인 배치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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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새가 아니”기에 “지상에 발붙이고”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상은 어떤 세계인가. 영원히 계속되는 장마에 감자의 뿌리는 열매가 되지 못한 채 “싸가지 없는 새파란” 덩굴만이 “창궐”하고 있으며 기어코 핵을 부화해 버린 돔은 암흑의 핵심이 되어 우리가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새들의 섬에 새가 없고 인간의 땅에 인간이 없는 세계, 꽉 맞춰진 퍼즐처럼 완벽하게 “낡고, 지루하고, 비루하고, 상투적인 악몽” 과도 같은 이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가.

불가능한 꿈을 꿈으로써 이 악몽에 균열을 내기 위해 작가는 이 세계가 부화시키지 못한 세상의 모든 알들을 과감히 품어 낸다. 가위가 새가 되는 연금술을 통해 새가 없던 새들의 섬에 새들을 탄생시킨다. 그렇게 부화된 퍼즐 조각들의 애잔하고도 유려한 비행이 최종적으로 직조해 낸 장면은 이렇다. 사람은 새가 아니지만 사람이야말로 지상에 발붙이고 사는 한 마리 새라는 진실, 혹은 아직 꾸지 않은 꿈.  - 김현영(소설가)


저자 소개


   배이유

유년 시절부터의 책에 대한 탐닉이 제대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빙빙 떠돌다 인생의 중반에 소설 쓰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2011년 <한국소설>에 등단해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지면에 소설을 발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거듭된 낙선으로 각종 신춘문예와 문예지를 통한 등단심사 제도에 강하게 회의를 품던 시기였다. 그러면서도 기존 제도에 화려하게 편입되고 싶은 인정 욕구에 부대꼈다. 문학 자체의 논거보다 치열한 경쟁에서 선택될 수 있는 여러 비기들과 심사의 불공정성이 소문으로 떠돌았다.

「퍼즐 위의 새」에 실린 소설 중에서 몇 편을 발표했다. 201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상’을 수상했다.

이 책 한 권으로 나를 규정할 수는 없으리라. 미래의 다가올 어떤 문장에서 상상의 가지가 뻗어 나와 카프카의 ‘변신’처럼 소외된 벌레로, 옛 설화 속의 우렁각시로 혹은 ‘계속되는 무(無)’에서처럼 존재의 호박으로 무한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변신. 그건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문학에 대한, 나에 대한 끈질긴 희망이다.




차례 




작가의 말


분홍 사다리

압정 위의 패랭이꽃

조도에는 새가 없다

창궐 

퍼즐 위의 잠

옛날옛적 수족관에는

그린그레이 

너라는 책 

포옹 

창궐 2 


책 속으로


「분홍 사다리」

바닥과 천장, 아니면 천장보다 더 먼 다른 두 세계를 이어주는 짜디짠 문? 그는 골방으로 이어진 사다리로 내려와 내게 걸어 들어온다. 그의 발아래에서 소금 알갱이들이 투둑 떨어진다. 문득,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그렸던 분홍 사다리 주위의 하얀 가루들이 눈이 아니라 소금일 거라는 직감이 든다. (27쪽)


「압정 위의 패랭이꽃」

우리네 삶이, 생명이 그만큼 불안하고 위태롭다는 뜻으로 적어봤네. 압정 위에 패랭이꽃이 필 수 있겠나. 세운다면 그건 기적이지. 사람들 하는 일이 다 그래. 아무 죄의식 없이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저지르지. 책임도 못 지면서. (48-49쪽)


「조도에는 새가 없다」

여자는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했다. (83쪽)   


「창궐」

39일째.

태양을 기다리지 마라, 이미 죽어 관 속에 들어갔나니. (106쪽)


「너라는 책」

책상 서랍에서 체온계를 꺼내 입에 문다. 내 안의, 에너지의 온도, 살아 있음의 확인. 잠시 후 입 안의 체온계를 꺼내 눈금을 본다. 36.7도. 체온계를 그의 책 중간 지점 170쪽과 171쪽 사이에 책갈피처럼 꽂아 두고 책을 덮는다. 한순간의 틈새 같은 시간을 잡아둔다. 체온계를 꺼내 은색 기둥을 본다. 36.4. 그의 온도 36.4도. (207쪽)


「포옹」

아, 아,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 두려움을 떨치며 울음을 눌렀던 그 여린 아가의, 질기고 오래된 핏빛 절규. 그는 붉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오랜 얼굴을 깊숙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달의 기운으로 물이 밀려오듯 이상하고도 낯선 감정이 그의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오래전에 잊혔지만 분명 친근하고 익숙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동굴 안의 그를 느꼈다. (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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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eph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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