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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책/저자 인터뷰

김해 뉴스 발, <꽃보다 붉은 울음> 저자 인터뷰

 

 

 

 

 

     
'꽃보다 붉은 울음'… 한센인의 영혼을 치유한 시
인제대 인문의학硏 김성리 교수 한센인 할머니 삶 담은 책 펴내
2013년 12월 17일 (화) 14:42:33 호수:152호  11면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시 치유에 대한 인문의학적 접근 통해
대동 이말란 씨와 시·구술 형식 만나
상처와 회한의 60년 삶 11편 시로
문학이 고통을 치유한 소중한 사례


"할머니 말씀 열심히 듣고, 함께 가슴 아파 하고, 이런 삶도 있구나 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김성리 연구교수가 한센인 할머니의 삶을 담은 책 <꽃보다 붉은 울음>(알렙, 1만4천 원·사진)을 펴냈다. 이 책은 '치유 시학'의 관점에서 시 쓰기와 구술을 통해 한센인의 영혼을 치유한 경험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치유 시학은 삶의 문제에서 비롯된 고통을 시를 통해 치료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갖는 무미건조함을 걷어내고 감성을 통해 치유를 모색하는 학문을 말한다.
 
김 교수는 "시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한다면, 실제로 사람이 치유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센인 할머니(이말란, 1927~2009)를 만났다"고 연구 계기를 밝혔다. 김 교수의 연구는 '시 치유에 대한 인문의학적 접근-한센인의 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정리돼 한국의철학회(대표 권상옥)에서 펴내는 <의철학연구(2012, 13집)>에 수록됐다. 김 교수의 논문은 연구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렀다. 여러 학회에서 연락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자체 운영 중인 웹진 'ⓔ시대와 철학'에 치유시학에 대한 원고를 써달라고 요청해 왔다.
 
김 교수는 "처음부터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설형식으로 쓰려 했으면 힘들어서 못 했을 텐데, 웹진에 연재를 한 덕분에 책이 나올 수 있었다"며 "연재 중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들어왔는데, 할머니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한 곳이 알렙출판사여서 거기에서 책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 김성리 교수
김 교수에 따르면, 김해시보건소와 울산·경남한센인복지센터지부에서 시행한 한센인 합동진료를 따라다니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환자를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진료 팀을 따라 한센인 마을을 방문하기를 몇 번. 드디어 대동면의 한 마을에 사는 이말란 할머니가 연락을 해왔다.
 
김 교수와 할머니는 7개 월 여에 걸쳐 매주 두시간 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김 교수가 다가앉으면 할머니는 꼭 그만큼씩 물러났다. 김 교수와 할머니의 첫 대화는 이랬다. "머하는 사람이라고 했노?" "시를 공부합니다." "시 공부하는 사람이 나는 머할라꼬 찾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김 교수가 다시 말했다. "어머니하고 이야기하려고 왔죠." "어무이가 있나?" "네. 고향에 큰오빠 내외와 함께 계세요." 그제서야 할머니가 아주 조금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도 딸이 하나 있다. 아이다. 둘이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의 60년 삶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김 교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고, 함께 울었다. 할머니가 지나온 시절을 시로 읊으면 받아 적은 뒤 다시 읽어주었고, 할머니는 수정을 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해서 11편의 시를 남겼다.
 
이말란 할머니는 1927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녀에 재학 중이었던 17세 때 일본인 대학생 마쓰시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한일 양국의 적개심은 아랑곳없이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갔다. 할머니의 시 '첫사랑 이야기 2'는 그 뜨겁고 애틋했던 사랑을 담고 있다. "마스시타, 포켓에서/ 손수건 꺼내 내 눈물을 닦아주며/ 서로가 위로하고/ 정을 주며 정을 받고/ 둘이가 양 손 굳게 잡고/ 우리의 따뜻한 깊은 사랑"이라는 대목을 읊으며 할머니는 옛 추억에 젖곤 했다.
 
18세에서 19세 사이에 임신과 함께 한센병이 발병했다. 19세 때였던 1945년 광복 직전에 마쓰시타와 헤어졌고, 그해 8월에 마쓰시타의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김해 출신 재일한국인에게 입양을 보냈다. 김 교수는 할머니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마쓰시타가) 아들이 있는 건 알고 갔제. 같은 하늘 아래 있으모 언젠가는 안 만나겄나. 혹시라도 지나가다 마주치면 닮았다 싶어 서로 쳐다는 보겄지. 평생에 한 번은 보겄지." 책에 수록된 할머니의 육성이다.
 
부산고녀를 다녔던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한 한센병과, 헤어진 연인과, 입양 보내야 했던 아들 등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물 한 모금 마시려 해도, 동네사람들은 우물가로 달려와 물통을 발로 걷어차며 못 마시게 했다. 김 교수는 "벌레도 풀이나 이슬을 먹고 사는데, 나는 사람이다 하고 소리 질렀다. 나는 벌레도 아인기라"라며 그 시절을 아프게 회고하는 할머니의 눈가의 눈물을 떠올리며, 목이 메었고, 말을 잇지 못했다.
 
김 교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매주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계속 할머니를 찾아갔고, 전화연락도 자주 했다. 그런데 한창 논문 마무리 하고, 심사받을 준비하느라 한 달 정도 찾아뵙지를 못했는데, 그때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한 번 더 할머니를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그것이 지금도 한스럽다."
 
<꽃보다 붉은 울음>은 문학이 고통에 찬 한 인간의 아픔을 치유한 소중한 사례이면서, 동시에 한 할머니의 유언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중년 신사로 훌쩍 자랐을 아들이 어쩌면 이 책을 읽을 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줄 것을 김 교수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시를 읊으면서 자신의 고통을 치유했다면,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상처를 눈물로 씻어내는 또 다른 치유를 경험하게 될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