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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과 책/알렙 책 소개

<정신병리학 총론>초판 100년 만에 한국어판 최초 완역 발간

 

 

<정신병리학 총론>/카를 야스퍼스 지음 /2014.2.14 /아카넷

 

의사 출신으로 정신의학자이자 의철학자이면서 실존철학자인 야스퍼스의 인간 탐구
초판 100년 만에 한국어판 최초 완역! 정신의학과 철학 분야의 고전이자 명저!

『정신병리학 총론』을 쓴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현대 실존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정신의학 분야에서도 정신병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그 업적은 물론 영향 또한 매우 크다.

야스퍼스는 1910년 병적 질투 현상에 대해 독창적인 에세이를 썼으며, 이 글은 나중에 그의 정신병리학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28세의 나이에 책을 집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정신의학사의 기념비적 저서가 될 『정신병리학 총론』(1913년 초판 출간)이다.

초판이 발간된 1913년 당시 야스퍼스의 나이는 약관 30세였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의학 임상 경험 5년여 만의 일이었다. 이후 총 6차례나 수정 증보가 이루지면서 정신병리학 전반에 대한 철저한 체계 확립과 개념의 명료성에 대해 기술되었으며 철학적 맥락이 흐르도록 수정되었다.

야스퍼스는 정신병리학이 생물학일 뿐만 아니라 인간학임을 주장했는데, 아주 예리하고 명확한 연구 방법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신병리학자는 위험이나 광신(프로이트의 성이론 같은), 신비주의(국소론局所論 같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의사 출신으로 정신의학자이자 의철학자이면서 실존철학자인 야스퍼스가 정신병리학에서 이룩해놓은 업적은 크게 다음과 같다. 현상학적 방법론을 통해 현상학적 정신병리학을 창안한 점, 발생학적 이해의 방법론을 탐구함으로써 이해심리학의 기초를 마련한 점, 병적학(病跡學)을 개발하여 과학적 병리학의 기초를 세우고 이러한 연구 방향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정신병리학에 부여한 점, 당시의 지식을 위한 방법론을 정신병리학에서 전개한 동시에 그 연구들이 어떻게 오늘날에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은가 하는 정신병리학적 인식과 지식을 비판함으로써 정신병리학을 학문으로서 정립시킨 점 등이다.

『정신병리학 총론』은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인간에 관해 연구하는 정신의학 분야에서 계속하여 기초적이고도 지향적인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연구, 인간 이해에 대한 통합적 안목을 제시하는 인간학

책의 초판이 출간될 당시만 해도 정신병리학은 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등장하여 논란이 많았던 시기였다. 야스퍼스는 정신의학이 단순히 신경해부학이나 신경생리학 또는 임상심리학의 적용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또한 환자의 사례들을 단지 임상적으로 기록하거나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면서도 각각의 개별적 요소를 고려하는 독특한 체계와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엄밀한 현상학적 입장에 서서 정신병리를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학문으로서 확립하려 했으며, 정신과 의사는 인문주의와 사회적 연구에 속하는 관점이나 방법을 취할 것을 주장했다.

『정신병리학 총론』에서 야스퍼스는, 정신의학은 인간 이해를 추구하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보면 극히 한정된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 이해에 필수 학문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정신의학 영역을 넘어 철학, 문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등 인문·사회 여러 분야에 영향

책은 야스퍼스도 그 의의를 인정받게 하려고 애썼듯이 인간 영혼의 게슈탈트에 대한 훌륭한 통찰을 갖게 한다. 동시에 야스퍼스는 모든 사람, 모든 연구자, 특히 자연과학적 편견을 버릴 용의가 있는 의사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연과학적 관점이 불가결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완전한 인간존재까지도 포괄하는 규칙에서 경험적 사실은 인간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완전한 길임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우선 철학을 하면서 알 수 있는 것, 이해할 수 있는 것, 설명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분명히 밝혀지고 인간의 총체성을 알게 되면 인간존재의 신비가 밝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야스퍼스는 광범위하게 분석을 시도했기 때문에 그 총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은 거의 없었다.

『정신병리학 총론』은 이처럼 인간 이해에 대한 통합적 안목을 제공하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정신의학의 영역을 넘어 철학, 문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등 인문·사회의 여러 분야에 커다란 학문적 기여를 해온 고전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로 번역의 철인 3종 경기라고나 해야 할까, 모임 때마다 번역자들의 탄식 소리는 깊어갔다.”
정신과 의사들과 철학자들의 만남 … 본격적인 4년 반간의 번역, 이후 토론과 수정, 감수에 재감수


이 한국어판을 번역하고 주해한 정신과 의사들과 철학 전공자들은 번역을 시도하기에 앞서 수년 전부터 ‘정신병리문헌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신병리학의 문헌을 연구해왔다. 모임은 매월 한 차례씩 모여 정신병리학의 고전적인 문헌을 읽고 토론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시로 느끼게 된 문제는 정신병리적 현상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체계적인 토대가 될 만한 책이 한국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정신의학 용어의 혼란이나 불명확한 개념 또한 지속적으로 부딪치는 문제였다. 정신병리학 분야에서 기초가 되는 책이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 총론』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었다.

번역의 원칙은 일단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는 것, 번역된 부분을 감수자와 토론하면서 수정하고, 수정된 번역을 감수자를 바꿔가며 재수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번역의 마지막 과정에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원문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윤문하기로 하였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번역의 난해함을 이유로 의역을 시도하였다면 번역 작업은 제어할 수 없는 수렁에 빠졌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토론 및 수정 모임이 열렸다. 번역자 모두는 정신병리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면서 그 많은 양의 원고를 야스퍼스 혼자서 집필하였다는 사실에 매번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도 요즘처럼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에 각 분야의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섭렵하여 일관된 내용으로 엮어냈다는 점이 놀라웠고, 그래서 이 사람이 과연 우리와 같은 종의 사람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번역 사업이 시작된 지 4년 반이 지났다.

2012년 들어 번역과 감수 작업을 일단 마무리하였다. 아니 마무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다수의 연구자와 감수자들은“다시 한 번 수정을 한다면 좀 더 읽기 편해질 것이다. 이 정도 수준에 만족하고 이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며 최종 감수를 제안하였다. 이렇게 하여 다시 반 년간의 재감수 작업을 거치고 나서야 이 한국어판이 나오게 되었다.

“‘아마 영원히 수정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확실한 것은 결코 ‘번역을 마쳤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번역의 부족함을 너그러이 용서해달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