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렙과 책/북리뷰

천만 번 흔들리는 '불혹'에게 띄우는 편지

작년 오마이뉴스제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이 계절에 어울리는 책이라 이곳에도 공유합니다.^^




천만 번 흔들리는 '불혹'에게 띄우는 편지
[서평] 항심(恒心)의 결기를 촉구하는 아포리즘의 향연 <불혹의 문장들>




나의 '20년 지기' 택수에게,

우린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면 좁디좁은 골방에 앉아 먼동이 터오던 새벽까지 함께하곤 했었지. 짐짓 호방한 목소리로 세상을 논하거나, 유치한 언사로 사랑을 고백하고 조롱하던 스물 언저리, 남루했지만 적어도 비루하진 않았던 그때. 영원할 것 같던 청춘의 치기는, 어느 덧 세월 앞에 추억이 되었네. 벌써 스무 해가 흘렀다.

공자는 '미혹되지 않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불렀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린 가녀린 봄바람에서 쉬이 흔들리고, 한순간의 모함에도 가슴이 무너지는 세월을 산다.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성년이 된, 우리 '92학번'과 그 이후 세대들은 무엇을 성취해야 할지 몰라 무력감에 시달리다 97년 IMF 사태를 맞이했지. 사회적 명분도 우리 것이 아니었고, 사회적 성공도 버거웠던 그 시절을 지나야 했다. 그렇게 세월을 견디며 다다른 마흔의 삶은 다시 위태롭다.

오랜만에 편지를 쓴다. '20년 지기'의 자네만이 나의 가슴속 열망, 혹은 고독을 알 것 같아서. 어쩌면 이 편지는 너의 이름을 빌어 나에게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혹의 열망과 고독을 드러낸다는 것은 사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그것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그런 용기를 갖기까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단다. 이 편지의 시작은, 이 책을 나누고 싶은 바람이 부추긴 것인지도 모른다.

인문학적 자기계발의 모범

이 책 <불혹의 문장들>은 일본 유학사(史)의 '백세(白世)의 홍유(鴻濡)'로 불리는 사토 잇사이의 잠언집이다. 불혹부터 40여 년간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리를, 흡사 자수를 한 땀 한 땀 놓듯이 기록한 말(言)과 뜻(志)들'이다.


사토 잇사이는 52세에 <언지록>(1824)을, 66세에 <언지후록>(1837)을, 78세에 <언지만록>(1850)을, 80세에 <언지실록>(1854)을 썼고, 이 네 권을 합쳐 <언지사록>이라 부른다(우리나라엔 <언지록>이란 제목으로 완역본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 <불혹의 문장들>은 시인이자 인문학자인 노만수가 <언지사록>을 8가지 주제로 나눠 발췌하고 해설을 입힌 책이다.

"저자는 '마흔 살이 지나면서 처음으로 시간이 아깝다는 것을 알고' '마흔이 넘으면 점차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나' '마흔 살부터 육십 세까지는 한낮의 태양과 같으니 덕을 쌓고 큰일을 이루는 시절'이라고 하였다."(엮은이 서문, 본문 5쪽)

시간이 아깝다는 것을 처음 깨닫는 '마흔'의 때, 그로부터 어떤 '큰일을 이루는 시절'을 맞이하기까지, 우리에겐 어떤 위로와 희망이 필요한 걸까. 도대체 '큰일'을 향하여 질주할 수 있는 여력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까. 사토 잇사이의 잠언은 과연 우리의 무력함과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을까.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기계발서의 위험성과 무용론을 말하곤 했었지. 대개의 자기계발서는 독자의 욕망에 최대한 응답하되, 종국에는 그것을 철저히 유린하는 것으로 끝난다. 자기계발서 분야의 지존인 어떤 작가는 고전 독서 10년이면 천재가 되고 세상에서 성공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왜곡이고 거짓이다. 그가 말하는 독서법으로 고전 탐독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고전을 자신의 업으로 탐독하고 연구했던 나의 동료들은 지금 대부분 비정규직 시간강사로 허덕이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떨까. 과연 '인문학적 자기계발'은 가능한 것일까. 중요한 것은, 자기계발의 목표와 과정에 있겠지. 이는 사토 잇사이가 말한 '큰일'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뜻을 세운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어떤 함의를 갖는가란 질문의 답을 찾으면 될 것 같다.

저자는 뜻을 세우는 '입지(立志)'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입지는 '자신의 불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남의 불선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오로지 뜻만은 스승에게라도 양보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은 종종 '세속에 반하는' 방식으로 실천된다고 한다.

"입지의 '입(立)' 자는 수립(竪立, 곧게 섬), 표치(標置, 기품을 높이 가짐), 부동(不動), 이 세 가지의 의미를 함께 품고 있다. 즉 입지란 뜻을 곧게 세워 그 뜻으로 기품을 높이 세우고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마음으로 뜻을 펼치는 것이다."(언지록 22조, 본문 24쪽)

'부동의 마음'은 곧 '항심(恒心)의 결기'다. 뜻을 마음에 세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큰일'이다. 저자는 위로의 언어를 남발하지 않지만, 본래 우리 마음은 하늘에서 유래하였다는 깨달음을 선사한다. 무엇을 더 채우는 방식이 아닌, 비워야만 이를 수 있는 마음의 진보다. '진보할 때 퇴보를 잊지 않는' 겸양과 성찰의 도리를 익히며, 홀로 고독의 자리를 사수하고 인내해야 한다.

"'수(需)' 자는 '비오는 하늘(雨天)'을 뜻한다. 비가 올 때는 기다리면 개이지만 기다리지 않으면 젖어버린다."(언지록 129조, 본문 33쪽)

인문학이란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학문 분야을 일컫지만, 그 어원은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는 '인간다움'이란 뜻이다. 즉 인문학은 참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앎의 방식으로 정의되어야 마땅하다. 언젠가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앎의 신체성'을 통한 '몸의 인문학'을 강조하였다면, 사토 잇사이는 '마음공부'를 통한 '마음의 인문학'을 강조하는 셈이다. 결국 참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마음공부'라는 자기계발 혹은 자기수련을 통해 이르고자 하는 것이지.

흔들리는 '불혹'에게 권하는 절창의 아포리즘

이 책은 '마음을 어찌 기르란 말이냐'고 묻고, '의리로 마음을 길러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답한다. 자문자답처럼 보이나, 저자는 우리의 마음을 눈치 챈 듯하다. 불혹이란 이름을 가졌지만, 위태롭게 버티는 우리의 고독을 아는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의 미덕은, 마음의 본령이 결국 우리의 현실이란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지점에서 우린 위로 받고 용기를 얻는다.

"모든 경서를 읽을 때에는 반드시 자신이 경험한 세상사와 사건을 경서의 각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실제의 일을 처리할 때는 반드시 성현의 말씀을 각주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실제와 도리가 일치해, 학문은 결코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언지록 140조, 본문 149쪽)

'수양은 저잣거리에서도 이룰 수' 있어야 하며, 우리는 '땅을 따르며 하늘을 섬기는 양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의 수양이 중요하나, 마음이 딛고 서 있는 현실의 자리도 중요한 까닭이다. 따라서 이 책은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는 현실적인 지침들로 가득하다.

가난해도 즐길 줄 아는 처세를, 길함과 흉함, 고통과 즐거움, 삶과 죽음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는 자족의 지혜를 기르라 한다. 그런가 하면 선을 행할 마음 없이 학문을 탐하는 것은 자칫 화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큰소리치는 자는 사람됨의 도량이 작은 자이며, 장담하기를 좋아하는 이는 그 사람됨이 겁쟁이라 일갈한다. 하여 '자중하고 자중하고 자중하라'고 권면한다.

"남은 봄바람처럼 대하고, 가을 서리처럼 스스로를 삼가야 한다."(언지후록 33조, 본문 255쪽)

사토 잇사이의 처세술은 자연의 이치에 기초하고 순응한다. '정직을 마음의 각주로' 삼아 순리를 따르되, 타자를 향한 세심하고 곡진한 정성을 담는다. 그런 까닭에, 그에게 있어 처세의 달인은 곧 공자의 <논어>에 통달한 자로 '남의 말을 잘 헤아리고 안색을 잘 살피며, 자신을 남보다 낮추어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또 잇사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마흔 인생도



우리의 청춘은 남루할지언정 비루하진 않았는데, 우리의 불혹은 남루하진 않으나 비루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우린 도대체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 천만 번 흔들리는 인생은 비단 청춘만이 아니다. 세상에서 불혹의 자리는 쉬이 흔들리고 좌절하는 욕망의 비루함이 깃들어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처세의 본질은, 자못 처연하고 위태롭다. 그런 우리를 향해, 사토 잇사이의 아포리즘은 항심(恒心)의 결기를 촉구한다. 본래 옳고 그름은 하늘에 속한 것이고 우리의 마음은 하늘에서 유래한 것이니, 그 결기는 타당하다.

부디, 자네와 나의 인생도 그 뜻을 품었으면 좋겠다. 온갖 미혹에 위태롭던 우리의 존엄을 결연한 수양으로 회복하여, 사또 잇사이가 그랬던 것처럼 마침내 우리 인생이 죽음을 맞이할 때 '그 어떤 번뇌도 없는 고요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를 위해, 이 책을 읽고 나누며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을 다시 우리 가슴에 품자.

편지와 함께 책도 보내니, 꼭 읽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 앞으로 20년만 더 사귀자.

2013년 5월,

그대의 '벗' 진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