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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과 책/내용 속으로

우리에게는 또 다른 영토가 있다, 저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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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에게는 또 다른 영토가 있다>의 프롤로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앞서 <알렙 책 통신> 소식지의 뒷면에 게재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읽기 편하게 텍스트 파일로 올려드립니다.

 

 

 

 

 

이 글은 <우리에게는 또 다른 영토가 있다>의 권두에 실린 좌담 내용의 일부입니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의 저자인 김정태 MYSC 이사와 공저자인 송화준, 한솔이 만나 이루어진 좌담회에서, 우리 시대 사회 혁신가들의 현주소를 묻고, 이들이 일구어나가는 새로운 영토 위에 지어지는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합니다.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혁신, 공유 경제에 관심을 갖는 분들에게 보내는 열린 초대장을 눈여겨보시길 권유합니다.


또 다른 청춘의 영토를 찾아 떠나며


한솔   책 제목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영토가 있다』예요. 우선 여기서 말하는 ‘또 다른 영토’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새로운 청년들만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제목을 내놓게 되었잖아요?
송화준 씨와 저는 각자 우리 세대들을 인터뷰하면서 느꼈던 점이 있을 테고, 김정태 이사님은 새로운 영역의 전선에서 뛰는 많은 청년들을 보셨을 텐데, 각자가 생각하는 ‘또 다른 영토’는 무엇인가요?

김정태   ‘우리에게는 또 다른 영토가 있다’라! 제목의 의미가 색다른 것 같아요. 여기서 말하는 ‘또 다른 영토’라는 단어는 이 책에 나온 여러 인터뷰이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포괄하고 있죠. 저는 그 의미를 간단히 말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경제/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기존의 ‘게임의 규칙’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것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규칙들 말이에요.
대표적인 기존의 규칙은 이런 거죠. 돈을 버는 일은 ‘영리’의 영역에만 머물러라. 그리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비영리’ 영역에만 머무르라는 규칙 말입니다. 영리와 비영리가 철저히 구분되었거든요. 이렇게 기존의 사회가 강요하고 있는 게임의 규칙과는 전혀 다른 규칙을 만들어가면서 활동을 하시는 분들에게서 저는 새로운 ‘영토’를 보게 됩니다. 물론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라는 게 형성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희미하게나마 드러나고 있지요.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이 그 영토의 윤곽을 함께 추적해 나가는 모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송화준   저는 개인적인 얘기로 시작하고 싶어요. 사회에 나와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가 되니까 뭔가 답답하고 막혀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기존에 구축되어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도 진지하게 던져보게 되었고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기존의 영토’로 충분한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되어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지를 머릿속에 그려보게 되었어요.
‘왜, 세상의 수많은 불합리를 주체적으로 바꾸려는 사람은 없지’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야, 분명히 있을 거야’라고 희망을 품었죠. 없으면 너무 절망스럽잖아요. (웃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세상을 바꾸려는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인터뷰 작업을 시작했어요.
제가 만났던 청년들이 주로 활동하는 영역을 굳이 말해 보자면, ‘사회 혁신’, ‘사회적 기업’, ‘공동체’, ‘공유 경제’ 등의 키워드와 만나겠죠. 이런 영역의 사람들이 결국은 제가 찾게 되는 사람들이었어요.

한솔   저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 많이 고민해 보게 되었어요. 저도 송화준 씨처럼 처음부터 그 질문에 대한 답의 윤곽이 완벽히 드러난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점점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함께 사는 삶, 공존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태도 등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통해 재밌게 느낀 점은요, 똑같은 사회적 문제도 어떤 사람들에겐 ‘위기’로만 보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기회’로 보인다는 사실이었어요. 인터뷰를 통해 만나게 된 분들은 기회로 보는 분들이었죠. 사실 사회적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려고 나선 사람들의 가치에 공감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선한 영향력’이 거대한 임팩트를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이라는 거죠. 그런 토양을 조금 외롭지만 뚜벅뚜벅 걷는 사람들이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김정태   저는 여기에 나온 인터뷰이들을 ‘나무’로 표현해 보고 싶어요. 이 사람들의 스토리로써 우리는 열일곱 그루의 나무를 확인했다고 봐요. 모습과 크기는 다르지만, 아무도 뿌리내려 볼 생각을 못했던 땅(‘또 다른 영토’)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같죠. 이 점에서 그 나무의 스토리를 확인하는 것도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주죠. 전혀 뿌리내릴 수 없을 것 같은 땅에 나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이 보여주잖아요?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여러 가지 사례들이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는 빠른 시간에 회복한 삼림녹화예요. 한국은 1950년대에 한국전쟁으로 인해 산들이 황폐화되고 벌거숭이가 되었거든요. 벌거숭이가 된 민둥산들이 다시 단기간 만에 푸른 산으로 회복되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어요. 이 책에 나오는 열일곱 그루의 나무도 똑같아요. 황량해 보이는 민둥산과 같은 영토들에도 생명이 살아 있음을 우리는 확인했어요.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질까요? 저는 독자들이 이 책을 하나의 초청장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영토’에 같이 뿌리내려 ‘더불어 숲’을 이루자는 의미의 초청장 말이지요. 이런 나무들이 뿌리내린 곳에 여러분들이 열여덟 번째, 열아홉 번째…… 계속 이렇게 또 다른 나무가 되어서 동참하면 정말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더불어 숲’을 이루게 되면 그곳이 정말 그냥 단순한 하나의 ‘영토’를 넘어서 우리의 실제 삶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영역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고요.


우리가 꿈꾸는 지속가능성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나


한솔   약간 주제를 바꿔서,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전 이렇게 생각해요. 크게 나눠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지속가능성이 있겠지요. ‘사회’의 지속가능성, 그리고 ‘경제적/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의 지속가능성. 그런데 사회적인 문제는 개인들을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지속가능성에만 매몰되도록 생각을 주입시키다 보니까 생긴 게 아닌가 싶고요. 이제는 그 두 가지 영역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새로운 영토가 나오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송화준   중요한 지적이지만, 저는 균형 잡힌 이해를 위하여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고 봐요. 사실 한솔 씨가 말한 해석이 거시적으로, 그리고 제3자의 입장에서 들어맞을 수 있어요. 하지만 약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미시적으로 봤을 때 청년들에게 지속가능성이라는 ‘잣대’를 요구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거죠. 사실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은 사회적 토양이 어떻게 조성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거죠. 지속가능하냐는 말은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그거 돈이 되냐’는 말이잖아요. 청년들이 바라보는 지향점이 옳다면 당장의 잣대로 재단하기보단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할 문제로 인식해야 해요.
지금은 용감한 청년 몇몇이 시도하고 있는 단계잖아요. 죽은 땅 내놓고 씨앗 탓하면 되겠어요? 그런 노력들이 뿌리 내릴 수 있게끔 장려해 주고 박수쳐 주어야 할 텐데 말이죠.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친구들의 시도를 ‘너네의 시도가 비즈니스적으로 가능하냐’라는 질문으로 재단할 수 있냐는 거죠.

김정태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얘기하신 것 같아요. 청년들의 노력에 대해서 ‘지속가능’하냐는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 가혹한 게 맞아요. 왜냐하면 사실 이 영역의 생태계가 완전해지지 않았거든요. 제가 아까 열일곱 개의 고독한 나무라고 표현했잖아요? 여태까지 이 사람들이 각자 정말 불가능한 일들을 일궈온 거예요. 옆에 아무런 나무도 없이 이 나무들이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과정이란 거죠.
나무 몇 그루와 숲은 완전 다른 효과를 가져요. 숲이 만들어지면, 큰 나무는 작은 나무가 엄청난 태양 빛을 받고 고사되지 않도록 그늘을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고요. 나무들이 끌어 오는 지하수가 주위의 다른 나무들도 흡수할 수 있도록 이끼도 만들어요. 그리고 그런 식물들에 기반한 여러 동식물들이 번식하게 되지요.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공생공존의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거죠. 하지만 아직 숲이 형성되지도 못한 채 뿌리를 겨우 뻗은 나무들에게 ‘너희가 각자 알아서 사회적 기업 하든지 말든지 생존하라’는 태도는 기성 세대가 다음 세대에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니지요.
어쨌든 간에 열일곱 그루의 나무가 참 힘들지만 의미 있게 만들어졌고, 그 생태계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는 건 사실이구요. 또 거기서 더 큰 자신감과 더 큰 에너지를 받으면서 앞으로 도전할 청년들도 더 기대가 되네요.


비즈니스 모델도 다른 환경에서는 동일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송화준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것도, 똑같은 모델이 한국에서와 미국에서 동일한 효과를 절대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 사회의 사회적/경제적 생태계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서 특정 비즈니스 모델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못 살아남는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되잖아요. 생태계와 비즈니스 모델이 굉장히 상호적으로 움직인다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시도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들, 사회 혁신 프로젝트들은 그들만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들이 풀고자 하는) 사회적 문제에 얼마나 주목하고 응원하고 있냐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사실을 간과한 채, 현재 시점에서 ‘지속가능한지’ 여부만 놓고 재단하다 보면, 정작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업이 등장할 기회를 가로막는 우를 범할 수 있어요.

한솔   전효관 청년일자리허브 센터장님과 인터뷰했을 때가 떠올라요. 요새 사회 혁신, 사회적 기업 관련한 공모전이 많잖아요. 이분도 가끔 공모전 심사위원을 맡으실 때면, 다른 심사위원분들이 생각하는 잣대가 너무 불필요하게 엄격하다고 느끼신다는 거예요. 주로 다른 심사위원분들이 지원한 청년들에게 하는 질문이 ‘이게 검증된 모델이냐’라는 말이래요. 그런데 자기가 봤을 때는 너무 가혹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김정태   ‘게임의 규칙’을 다시 꺼내서 얘기하자면, 완전 다른 게임의 규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간에는 소통하기가 참 힘들다고 생각해요. 혹시 제록스라는 회사 아시나요? 복사기로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 만든 회사죠. 이곳에서 처음 복사기 사업이 제안되었을 때도 이사회에서 다 반대했다고 해요. 반대 이유가 재밌어요. 이렇게 말했대요. “도대체 이 세상에서 사본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거죠.
그런 ‘게임의 규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복사기가 원본을 값싸고, 빠르고, 편하게 복사해 주더라도 별로 호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지요.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내용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새로운 게임의 규칙에 대한 관점이 없는 상황에서는, 이 게임이 어떤 효과가 있고 어떤 놀라운 잠재력이 있는지 생각하기 어렵죠.

송화준   제록스 사례를 부연해서 이어가 볼게요. 인간이 어떤 기술을 받아들이고 그게 패러다임을 바꾸기까지 최소 30~50년이 걸린다고 해요.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인간이 새로운 기술을 접하면 그 순간에는 기존의 패러다임, 김정태 이사님 표현으로 하면 ‘게임의 규칙’으로 그걸 판단한다는 거죠.
제록스를 예로 들면, 복사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사본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한정지어 복사기의 시장성을 판단했어요. 그러니 그런 비싼 기계를 어느 회사가 들여놓겠냐는 말이 나왔던 거죠. 그런데 지금 우리는 다 알잖아요. 프린트의 용도가 얼마나 다양해졌는지. 이제 복사된 문서는 보관용보다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더 크죠.
새롭게 등장하는 청년들의 시도를 비판할 때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시대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참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비즈니스 상에서 지속가능하지 못한 것은, 사실 그 생태계가 아직 작동하지 못한 거거든요.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