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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과 책/알렙 책 소개

밤의 화가들



화가를 유혹한 밤,
밤에 매혹된 화가

 

한 소설가는 청춘의 감성적인 시절을 그려내는 소설을 쓸 때 새벽에만 글을 썼다고 했다. 어둠이 창밖을 검게 가리는 밤, 예술가에게 그 밤은 깊이 잠입해 있는 상상력이 한껏 춤추는 시간이다. 망상과 공상이 무궁무진하게 솟아나고 성찰과 반성이 날카로워져 삶이 더욱 또렷이 보이는 시간이다. 화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화가들이 밤을 그리고, 밤에 창작의 불꽃을 피웠다.

 

배경의 어둠을 몰아내고 생생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꽃, 나무, 사람, 별, 그리고 은하수……. 밤을 그린 화가를 떠올리면 짙은 프러시안블루를 화폭 가득 칠하고 레몬처럼 빛나는 별을 무수히 그린 고흐가 먼저 생각난다. 또한 깊은 밤 황량한 계곡을 방랑하다가 조용히 달을 응시하는 사람들을 그린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도시의 고독과 피로를 창백한 불빛 아래 드러낸 에드워드 호퍼, 상처받은 마음을 다스리며 해변을 걷다가 달그림자가 지는 풍경에 마음을 놓은 뭉크, 스모그로 희뿌연 템스 강변에 내려앉은 밤의 색조를 음악처럼 아름답게 그려낸 휘슬러가 떠오른다. 그들은 모두 밤에 매혹된 화가들이다.

 

고흐는 “낮보다 밤이 훨씬 생동감 있고 풍부한 색채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했다. 낮 시간 동안 날것의 색깔과 형태로 존재하던 것들이 밤의 색깔을 덧입으면 또 다른 존재인 것처럼 미묘한 색조로 변하기 때문이다. 풍경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낮 동안 활발하게 움직이던 이성이 밤이 깊어갈수록 촉촉한 감성으로 물들고, 마침내 고단한 노동은 달콤한 휴식과 포근한 잠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밤은, 사랑과 치유와 성장의 시간이다.

 

깊은 밤,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

 

이 책을 쓴 작가 최예선은 오랫동안 밤의 그림, 혹은 밤의 힘으로 그려진 그림에 매혹되었다.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루브르 박물관을 수시로 드나들던 시절, 야간 개장이 있던 녹턴에 그림들은 다른 얼굴을 드러내며 작가를 유혹했다. 조금 어둑한 실내에서 보이는 그림과 조각들은 낮과는 다른 사물로 보였다. 늘 보던 그림이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고, 초상화의 눈이 유난히 반짝이는가 하면, 실내의 풍경을 담은 소박한 그림이 정교한 퍼즐처럼 보이기도 했다. 구름 같은 인파를 몰고 다니는 〈모나리자〉는 마치 연극이 끝난 무대의 배우처럼 그녀를 기다리곤 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작가는 밤의 그림들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 그림 속에서 빛나는 영감과 서늘한 무늬와 그늘진 사랑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