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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과 책/알렙 책 소개

신간 소개 : 신승철 저, <욕망 자본론>은 약자/소수자의 자본론이다

 

 

회계 담론에 빠진 세계 자본주의를 구하라!

노동가치론에 기반한 『자본론』을 욕망가치론으로 새로 읽기

마르크스는 욕망의 자본화와 자본의 욕망화를 읽지 못했다!

 

 

신승철 박사(철학공방 별난 대표)는 작년 『녹색은 적색의 미래다』를 출간하고 나서, 이 책에서 간략히 소개한 “욕망가치”에 관해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게 실제 있는 개념이냐며, 이 개념의 효용성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올해 신승철 박사는 생태문화협동조합 ‘달공’과 철학공방 별난을 꾸려가면서, 공동체 경제를 풍부하게 만들어내는 소수자의 주체성은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들뢰즈/가타리가 주목한 소수자, 가타리가 제기한 욕망가치에 대한 지난 수년간의 문제의식과 연구들을 모아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로 책을 엮었다.

마르크스는 욕망(desire) 개념을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보고『자본론』 각주에서 필요욕구(need) 이외에는 예외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사실 욕망은 색다른 것을 창조하는 생명 에너지의 흐름이다. 이 책에서는 욕망가치와 기본소득을 연결시키는 색다른 사유의 구축물을 만들고자 했다. ‘욕망의 자본화와 자본의 욕망화’라는 색다른 국면을 욕망가치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이 기획은, 『녹색은 적색의 미래다』에서 다룬 ‘생명 위기 시대에 우리는 어떤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한 시도이다.







욕망 자본론

욕망의 눈으로 마르크스 자본론 다시 읽기

신승철 지음|348쪽|15,000원
2014년 8월 20일|ISBN 978-89-97779-41-3 03100




책 소개
욕망은 생명 에너지! 소수자의 욕망에 주목하라!!
 
『욕망 자본론』은 소수자와 생명 등이 어떻게 자본주의 가치 질서에 들어와 있으며 공동체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서술한 경제 철학 비평서이다. 저자 신승철이 제시하는 욕망가치론은 ‘노동가치’라는 고정관념에 대한 대대적인 전환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저자는 장기 비상 시대에 접어든 자본주의 경제의 가치 질서가 재편성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가진 가치론의 공백을 아주 색다른 질문과 문제제기를 통해 메워 보고자 시도하고 있다.


저자가 대결하는 영역은 속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통념화된 노동가치론에 대한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개념을 넘나들고 횡단하면서 ‘욕망의 지도 그리기’로 그려낼 수 있는 색다른 개념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욕망가치를 공동체 경제, 생태 경제의 색다른 생명 에너지이자 활력으로 여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입장에서 세상을 재창조하고 개념의 지도를 그려냈던 위대한 사상가이지만, 그의 노동가치론에는 커다란 공백이 있다. 즉, 마르크스는 욕망 개념을 『자본론』 각주에서 예외로 간주하였다. 그런데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소수자의 욕망에 기반한 “욕망가치설”의 단초를 제공한다. 뒤이어 펠릭스 가타리는 『분자 혁명』이라는 책에서 처음 “욕망가치”라는 개념을 언급하는데, 신승철의 “욕망 자본론”은 이 욕망가치론을 토대로 대안경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 하나의 가설이자 시론이다.


자본주의는 화석 연료 고갈, 기후변화, 생물 대량 멸종 등 장기 비상 시대로 이미 접어 들어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이 아니라, 발전 노선에 주목하게 만드는데, 저자는 발전 노선에서 욕망가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소수자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것이 욕망가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사회적 경제에서의 자본의 욕망화와 욕망의 자본화라는 색다른 국면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자본론』의 공백인 욕망가치 영역을 통해서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어떻게 초래해야 할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쉽게 말해서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욕망을 가진 소수자들은 그저 수혜적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색다른 관계망을 창발함으로써 보이지 않게 이 사회를 풍부하게 만들면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욕망가치론의 핵심적인 명제이다. 이러한 저자의 문제의식을 좀 더 간략히 정리하자면, “자본주의 경제는 소수자와 비노동 민중의 욕망가치의 생산성과 창조성에 기반하는 ‘발전 전략’, ‘기본소득’, ‘사회적 경제’로 이행하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저자는 스피노자-라이히-칼 폴라니-들뢰즈/가타리-가라타니 고진에 이르는 사랑과 욕망의 정치경제학 노선을 따르고 있다. 특히 가타리가 제기한 “욕망가치론”을 바탕으로 현대의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 대안이란, 욕망가치와 기본소득을 연결시키는 색다른 사유의 구축물이다. 저자는 성장(growth)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의 발전(development) 전략을 욕망가치론에 기반해서 재구성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발전 전략이 좌/우파의 공리계를 넘어선, 관계망의 성숙을 추구하는 경제 전략이라는 점에서 욕망가치가 그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읽지 못했던, 욕망가치는 무엇인가?
노동가치론에 기반한 『자본론』을 욕망가치론으로 새로 읽기


욕망가치는 어디서 나온 개념인가?   저자는 『녹색은 적색의 미래다』(알렙, 2013)에서 욕망가치론을 언급했는데, 사람들은 어디에서 나온 개념이냐고 또 실효성이 있냐고 묻기도 했다. 저자는 이 욕망가치론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이 다 채워주지 못한 가치론의 빈 곳을 메꿔줄 숨은 열쇠라고 감히 생각한다. 사실 욕망가치론은 펠릭스 가타리의 빛나는 책, 『분자 혁명』(푸른숲, 1998)의 후반부 「5장 기호적 구축물」 부분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거기에서 가타리는 마르크스가 얘기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이외에도 욕망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욕망가치’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정의를 ‘욕망과 정동의 강렬한 가치’라는 암시적인 말만 하였다. 자본주의 상품 경제를 설명할 때 사람들은 흔히 마르크스의 ‘상품의 이중성’에 입각해서 설명하지만, 상품 이외에 존재하는 ‘선물과 호혜의 경제’가 상품 질서 내부로 침투해 들어와서 정동과 욕망의 강렬도를 형성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바라보지 못한다. 상품이라는 물건에는 사랑, 정성, 인격이 담겨 있지 않지만, 선물이라는 물건에는 사랑, 정성, 인격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비자본주의 영역인 호혜 경제는 상품의 외부나 경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와서 욕망가치를 형성한다.  


욕망가치는 어쩌면 바로 당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신이 매일 하는 ‘살림’이 바로 욕망가치를 생산하는 욕망노동이다. 사실 욕망가치는 여성, 아이, 장애인 등의 소수자가 갖고 있는 욕망의 존엄을 밝히는 가치이기도 하다. 욕망가치는 정동의 흐름, 돌봄이라고 불리는 영역의 흐름이 공동체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유통되는 것과 불가분한 관련이 있다. 보통 사회와 공동체에서 돌봄에 대해서 말할 때, 들뢰즈와 가타리의 소수자 되기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공동체에서 사랑과 욕망의 흐름이 소수자를 부드럽게 감싸고 보살피는 것은, 이미 욕망가치가 공동체의 가치 질서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욕망가치가 굳이 가치론의 영역으로까지 들어와 설명되어야 하냐?”   마르크스가 언급했듯이 상품의 이중성, 유용성으로서의 ‘사용가치’와 교환 가능성으로서의 ‘교환가치’를 언급하면 과학적으로 자본주의가 해명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기 자본주의 상황에서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만 해결될 수 없는 차원이 새롭게 가치화되었다. 즉, 어떻게 욕망의 차원을 충족하고 욕망의 흐름을 전달하는가의 영역이 그것이다.


욕망가치의 실존을 가정하면 공동체 경제의 가치 질서 역시 해명된다.   공동체가 풍부하고 다양해지는 것은 소수자라는 특이점을 통과하면서 돌봄노동이나 정동노동으로 간주된 사랑과 욕망의 흐름이 발생될 때이다. 소수자에게 되기(becoming)라는 진행형적 과정으로서의 사랑을 투여할 때, 공동체는 생명 에너지와 활력에 넘치게 된다. 이러한 생명 에너지의 흐름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에 따라 나타나는 자본주의 가치 질서의 고정된 의미를 흔든다. 왜냐하면 사랑, 욕망, 정동, 돌봄과 같은 영역은 내가 네가 되는 흐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흐름으로 인해 ‘책상은 책상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방식으로 의미화되어 있는 상품의 의미 좌표에서 분열과 흔들림이 생기게 된다. 한편으로 사회적 가치에 가장 충실한 자본이 출현하고, 다른 한편으로 공동체의 파견자들에 의한 협동조합 등으로 나타나는 자본의 사회화와 사회의 자본화가 나타나는 이유도 흐름의 시너지효과에 대한 탐색에 기반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영역 사이의 명백한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교환가치/사용가치와 함께 욕망가치의 영역이 등장한다.


욕망가치를 말하면, 아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자본주의의 객관적 가치 질서 외부에 있는 주관적 가치 질서는 경제학에서 논외의 대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서비스 정신노동의 발전 과정을 보면, 감정조차도 노동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감정조차도 노동의 형태로 직조해 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감정의 가치화가 현실화되었다. 이미 자본주의는 주관적 가치 질서라고 여겼던 감정, 욕망, 사랑, 정동, 믿음, 희망, 꿈과 같은 영역으로 가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본주의의 포섭 작용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인 가치 영역들을 객관적 가치와 별개의 것으로 치부하려는 투박한 분류가 좌파들에게는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가치의 영역은 자본주의의 내부에서 엄연히 작동하고 있는 가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욕망가치를 생산하는 것을 욕망노동이라고 부른다. 욕망노동은 아이들이 문자와 색채, 음향, 몸짓, 언표 등의 기호를 습득하는 학습노동, 여성의 돌봄과 가사노동, 장애인의 재활과 이동을 위한 정상화노동, 정신질환자가 상담자를 만나서 자신에 대해서 분석하게 되는 분석노동,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서 TV를 보며 쉬는 시청각노동 등을 망라할 수 있다. 이렇듯 욕망노동은 이미 가치화되어 있는 영역이며, 실존의 좌표를 획득하고 있다.


자본의 상품은 공동체의 선물을 흉내 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크리스마스의 산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코카콜라이다. 산타클로스의 온화하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입힌 코카콜라의 이미지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달콤하게 들어온다. 문제는 우리의 무의식에까지 들어온 자본주의가 이제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특이성들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첨단기술사회에서 기계류의 창조와 생산은 이제 특이성을 어떻게 조성하고, 관계 성좌를 어떻게 배치하고, 생각의 경로를 어떻게 개척하는가의 여부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비자본주의 영역에 있는 공동체적 관계망에서 생산되는 생태적 지혜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생태적 지혜는 관계 내부에서 싹트는 지혜이며, 사랑과 욕망의 비표상적인 흐름이 의미 좌표를 흔들 때, 소수자라는 특이점이 공동체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 때 발생되는 관여적 지성의 산물이다. 이에 따라 생태적 지혜의 필요성과 다양성과 차이의 풍부함은 자본 역시도 말하고 있으며, 공동체를 먹잇감으로 둔 자본이 추구하고 있는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저자 신승철의 『욕망 자본론』은 기존의 소수자들에 대한 통념에 대대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즉, 소수자들은 특이성 생산을 함으로써 공동체 발전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관계망, 흐름, 상호작용에서 특이점으로서 작동하여 관계를 성숙시키고 발효시켜서 일반지성의 성숙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색다른 사유는 『요강』의 「기계에 대한 단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소수자의 욕망이 이 사회의 집단지성의 성숙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충분히 기본소득의 주체성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일갈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빠진 3가지 주체성: 아이, 광인, 동물

『자본론』은 소수의 입장에서 쓰일 수 없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는 아이, 동물, 광인과 같은 소수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읽다 보면 대부분 노동자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주체성이 숨어 있을 뿐이다. 책을 어느 주체성의 시각에서 쓰느냐도 굉장히 중요한데 소수자의 시각에서 쓰이지 않은 『자본론』은 정상인/성인/백인/남성/노동자들의 주체성의 입장에서 서술된 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자본론』은 왜 소수자 입장에서 쓰일 수 없었을까? 저자의 문제의식은 그 점에서 출발한다. 소수자의 욕망가치를 말하고, 소수자의 생태적 지혜를 말하고, 소수자의 욕망이 가진 생산성으로부터 출발할 수 없는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배제한 주체성으로, 아이, 동물, 광인 등을 대표 사례로 제시한다.


『자본론』은 자본주의적 주체성 중에서 말하지 않는 공백이 있다. 그래서 욕망 경제의 현존에 대해서 사유할 수 없었다. 욕망 경제에 대한 시도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 계열에서 출발하여 라이히에 의해서 기본적인 구도가 그려지고,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티 오이디푸스』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연구자들은 욕망 경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욕망과 자본의 관계와 욕망가치에 대한 연구는 맥이 끊겨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 요강』에서 언급된 「기계에 대한 단상」이 소수자의 욕망 경제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는 주춧돌로 간주될 수 있는 여지는 풍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단으로 불리는 이 전통은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설득되고 수용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낮다. 소수자라는 주체성은 『자본론』의 외부로서 위치하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발언이나 목소리에서는 배제되어 왔다. 물론 발전 노선하에서는 소수자들의 욕망가치를 승인하는 역사적인 행동이나 제도가 반짝 나타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 노선이 가진 풍부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그것이 수용된 과정은 그리 길지 않다.  


사실 『자본론』의 외부는 자본주의의 외부와 공명하는 바가 있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처럼 근대 초기 사회가 광인들을 바보선으로 추방했듯이 자본주의하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소수자들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를 풍부하게 만들어서 생태적 지혜와 집단지성을 산출하는 주체성으로 사유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펠릭스 가타리로부터 출발한 욕망가치론의 적용과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소수자를 말할 때, 사회적 약자나 양적 소수, 피해자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공동체와 사회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자본이 공동체적 관계망의 시너지 효과와 집단지성, 생태적 지혜에 주목하는 현 단계의 첨단기술사회에서 소수자가 관계 성좌를 풍부하게 만듦으로써 기계를 산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매우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을 보이지 않게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에게 전기를 주듯이 소수자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할 수 없다. 저자는 2000년 초반에 사회보장소득이라는 문제의식에 접근하여 비노동 민중의 삶과 욕망을 보장하는 데 초점이 맞추었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10여 년 동안의 지적 여정을 거쳐 ‘기본소득’으로 연결지어 정리할 수 있었다.



특징과 차별성


이 책의 특색은 서한문 형식이란 점이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아내에게 편지 형태로 전달하고 있다. 그의 기획 의도는 매우 좁으면서도 넓다. 노동자의 ‘노동’이 아닌 소수자의 ‘욕망’을 말한다는 점에서 매우 좁은 부분에 대한 저술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노동가치를 벗어난 욕망가치로 자본주의 세상을 설명하고 바라보겠다는 의도에서 상당히 광범위한 지적 작업을 해내고 있다. 이런 의도를 잘 투영한 관계가 ‘별난’(욕망을 뜻함)을 공동체의 필명으로 갖고 있는 ‘철학공방 별난’이라는 아내와의 공동체이다. 그의 편지는 세헤라자데의 끝나지 않는 천일야화처럼 색다른 세상의 재창조로 우리를 이끈다. 


이 책은 에세이풍의 편지 형식과 비평 서적의 내용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경제철학이라는 분야가 자칫 개념의 유희나 개념의 미로를 형성할 수도 있을 텐데 이 책은 현학적인 요소보다 성찰적인 요소를 가지고 출발한다. 저자의 다른 저작에서 보이듯이 표현의 현란함을 최대한 자제하고 문제의식과 생각의 경로를 개척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이 아내에게 부드럽고 자상하게 말을 걸고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욕망 자본론”이 갖고 있는 무거움을 덜어내고자 독자를 고려한 소프트한 글쓰기의 형태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저자는 방황하며 모색하고 성찰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각이 거침없고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점을 편집 과정에서 충분히 살려 원석대로 보여줄 부분은 그대로 살렸다.



주요 내용과 구성


이 책은 저자가 전공한 펠릭스 가타리의 ‘욕망가치론’이라는 개념의 구도를 더 확장하고 심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출발했다. 특히 소수자의 욕망이 공동체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듦으로써 일반지성의 성숙에 도움을 준다는 점은 특이하다. 이를 통해서 일반지성이 기계류의 혁신에 원천이 되며, 소수자는 자본주의에 보이지 않게 기여하는 존재들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소수자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욕망가치론의 내용은 저자가 그의 박사논문과 『녹색은 적색의 미래다』(2013, 알렙)에서 이미 개략적인 설명을 해놓은 내용이지만, 그것의 현실적인 논증과 사례화가 가능한지를 이 책에서 처음으로 타진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1부 욕망인가? 노동인가?>에서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앙티 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이라는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시리즈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욕망이라는 차원을 도입한다. 욕망을 생산하면서도 억제하는 자본주의는 분열의 이중 구속(double bind)을 내재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와 욕망 경제가 수렴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의미화와 분열이라는 한 쌍을 갖고 있고, 질문과 대답이 분열된 사회이다. 노동의 패러다임은 이익과 이해라는 점에서 정확한 의미화가 가능하지만 욕망의 패러다임은 질문과 문제의식 속에서 의미가 미끄러지는 색다른 구도를 그린다.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의미화할 수 없었던 욕망가치, 생명가치 등을 주석에서밖에 다룰 수 없었다.


<2부 욕망가치론과 기본소득>은 성장이 아닌 발전 노선에서 필요한 욕망가치론을 제기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역할을 할당받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내부 상점처럼 사회를 바라보면서 관계를 성숙시키는 내포적 발전을 기약할 때, 소수자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점에서 욕망가치론은 기본소득을 가장 필요로 하는 비노동 민중에 대한 이론이다. 


<3부 욕망은 상품 물신성을 어떻게 보는가?>는 자본주의의 ‘상품’과 공동체의 ‘선물’을 구분하면서 상품 물신주의의 기원을 탐색한다. 함수론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주의가 아닌 확률론적인 ‘경우의 수’가 중요한 공동체를 통해서 상품 물신성으로부터 벗어난 대안 경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공동체 경제의 선물은 욕망과 사랑의 움직임처럼 뻔하게 결정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 ‘어느 누군가’를 향하며 확률론적인 성격을 갖는다. 마치 양자역학의 경우의 수나 주사위 던지기처럼 순환하고 유통되는 선물은 상품 물신성으로부터 벗어난 대안 경제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4부. 욕망의 정치경제학은 가능한가?>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함께 쓴 개념인 욕망하는 기계를 통해서 네트워크와 같이 작동하는 공동체 경제를 사고한다. 이에 따라 아주 커다랗고 불변항으로서의 구조가 아니라 욕망하는 기계 간의 연결 접속의 성격에 따라 변이되고 횡단하며 이행하는 정치경제학의 구도가 그려진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접속(connection), 이접(disjunction), 연접(conjunction)이라고 규정했던 연결 접속의 특성에 따라 어떻게 욕망의 정치경제학이 달라지는가를 볼 수 있는 장이다. 


<5부 욕망과 기호의 경제>에서는 가타리의 흐름으로서의 도표와 고정관념으로서의 기표 간의 대결, 환상의 수다스러움과 사랑의 수다스러움의 대결이 그려진다. 자본주의는 기표와 같이 의미화하고 모델화될 수 있는 것들을 기성 상품으로 만들어, 사랑과 욕망의 흐름에 따라 의미 좌표가 흔들리는 것을 억압한다. 이에 따라 뻔한 상품, 뻔한 소비자, 뻔한 생산자로 규정되어 고정관념에 따라 상품이 거래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공동체 경제는 욕망의 기호 흐름을 통해서 의미화되어 재현될 수 있을 선물을 유통한다. 상품은 사랑과 정성, 인격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면, 선물에는 사랑과 정성, 인격이 담겨 있다.


<6부. 욕망 자본론>은 자본론의 외부가 바로 욕망이었음을 적시하면서, 욕망 자본론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장이다.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와 풀뿌리 공동체 간의 생활에서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어디를 가든 아파트, 육식, TV, 자동차와 같은 통속적 삶을 유지하고, 자본이 지나간 곳에 백화점, 마트, 편의점, 호텔 등이 자리잡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지자체에서는 국경을 넘나들며 매끄럽게 이동하는 초국적 자본을 머물게 하기 위해서 축제, 특산물, 디즈니랜드, 박물관 등으로 호들갑을 떤다. 욕망 자본론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외부인 아이, 동물, 광인의 비표상적인 흐름을 다시 받아들여 사랑과 욕망의 비표상적 흐름으로 바꾸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욕망 자본론은 자본이 사회화되고 사회가 자본화되는 이중적 경향을 갖는 현 시점에서 사회적 경제의 활력과 생명 에너지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글을 마친다.


욕망 자본론은 색다른 사유의 실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연관, 생활연관, 세계연관 속에서 세계를 재창조하려는 철학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마치 만화경을 쓰고 거리로 나선 사람이 좌충우돌하듯 의미의 성좌를 새롭게 형성하기 위해서 의미의 분열과 흔들림에 의존하는 방법에 따르고 있다. 이 책이 공동체 경제와 발전 전략, 사회적 경제에서 등장하는 주체성 생산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이 책이 사실은 생명 에너지와 활력으로서의 욕망을 촉발하고 고무하기 위한 실천적인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 • 신승철(申承澈)


2010년도에 동국대학교에서 『펠릭스 가타리의 분열분석과 미시정치』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에는 동물보호 무크지 《숨》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2012년에는 녹색당 생명권 정책의 초안을 썼으며, 당해 <성미산마을 연구조사 사업>에도 참여했다. 현재 동국대, 한성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철학공방 <별난> 공동 대표, 생태문화협동조합 <달공> 준비위원, 카라 소속 동물사랑도서관 아카이브 위원, 가톨릭 생명윤리연구소 전문 연구위원, 경희대 약학대학과 식약처 실험동물윤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역서로는 『사이버-맑스』(이후, 2003)가 있으며, 저서로는 『대한민국욕망공화국』(해피스토리, 2008), 『에코소피』(솔, 2008), 『대한민국 욕망보고서』(당대, 2011),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그물코, 2011), 『사랑과 욕망의 영토』(중원문화, 2011), 『분열과 혁명의 영토』(중원문화, 2011), 『루저의 심리학』(삼인, 2012), 『식탁 위의 철학』(동녘, 2012), 『눈물 닦고 스피노자』(동녘, 2012), 『녹색은 적색의 미래다』(알렙, 2013),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서해문집, 2013), 공저로는 『인문학 박물관에서』(인물과사상사, 2010), 『철학자의 서재2』(알렙, 2012), 『달려라 청춘』(삼인, 2014)이 있다.